ADVERTISEMENT

[우리는 맞수] 양창선-이영재 '양복' 대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부산시 중구 남포동 ‘당코리 테일러’이영재(李英宰 ·56)사장과 광복동 ‘국정사’양창선(梁彰善 ·54)사장은 양복 만들기를 천직으로 여긴다.

30년 넘게 맞춤양복 만들기 외길을 걸으면서 맞춤양복의 자존심과 명성을 굳건히 지켜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기성복과 싸움는 전술과 무기는 다르다.

李 사장은 맞춤양복의 전통을 지키면서 ‘인체를 이해한 옷’을 만들고 있다.반면 梁 사장은 변화를 시도하면서 ‘원 타임 시스템(One Time System)’이라는 양복제작으로 대응하고 있다.

‘인체를 이해한 옷’은 인체구조를 고려해 만든 옷이다.“사람마다 체형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옷을 만들 때 키 ·팔다리 길이 ·허리굵기 ·목선 등을 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뼈 ·근육 ·피부 ·손발 형태에 따라 다른 소재와 모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마른 체형은 품을 크게 하기보다는 볼륨감 있는 소재와 무 광택의 밝은 옷이 좋고 배가 나온 비만체형은 불룩한 배 부위에 앞 단추를 정하고 어깨와 엉덩이는 약간 넓게 살리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식이다.

李 사장의 옷에 대한 연구는 곧 인체에 대한 연구나 마찬가지였다.

“몸을 모르고는 좋은 옷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한편 인체골격을 직접 연구하기 위해 3년6개월간 동네목욕탕에서 때밀이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그는 이 같은 체험지식을 바탕으로 치수를 잰 뒤 고객의 어깨 ·등 ·허리 등을 만져보고 척추의 곧음과 휨 정도를 파악한 뒤 옷을 만든다.

그는 옷과 인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지난해 2월 ‘옷은 사람이다’라는 책을 냈다.

梁 사장은 “맞춤복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해야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주문복의 대중화를 위해 양복 만들기 30년간의 노하우에 기성복의 장점을 접목,‘원 타임 시스템’이라는 양복 제작법을 고안했다.

한국인의 체형을 20가지로 표준화,계절마다 다른 패션 ·디자인으로 완제품 1백여 벌을 전시해놓고 주문을 받는 식이다.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가봉 절차를 거치지 않아 옷 주문에서 납품까지 기간이 종전 8일에서 3일로 단축됐다.

옷을 빠르고 쉽게 만들지만 맞춤복의 개성과 품위는 결코 잃지않았다.시간이 준 만큼 가격을 15∼20%정도 낮췄다.

시간 단축은 무엇보다 부산에 관광오는 일본인을 고객으로 잡을 수 있도록 했다.일본 JAL항공사 홍보잡지에 소개돼 일본인 단골도 수십 명이나 된다.

李 사장은 건강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중 1969년 친구 권유로 복장학원을 찾았다.1년간 패션 디자인과 의류제작의 기초를 다지고 7년간 재단사 수업을 거친 뒤 77년 남포동에 당코리 테일러를 개업했다.

‘당코’는 단골의 억센 말이고 ‘리’는 그의 성(性).맞춤복 대중화를 위해 70여회의 패션쇼를 열었다.‘옷은 사람이다’ 등 3권의 책을 냈으며 부산대 ·부경대 등의 의상학과에 강의도 나갔다.서면 롯데호텔에도 지점을 열어놓고 있다.

梁 사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기술 하나라도 확실히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18세때 고향(제주도)을 떠나 부산에 왔다.

당시 부산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광복동 현대양복점에서 잔심부름 ·청소 등 힘든 ‘시다’생활을 거쳐 다림질 ·재봉 등을 배웠다.

7년간 재단사로 일하다 83년 국정사를 인수했다.그는 기능대회 양복부문 금메달리스트를 5명이나 배출할 정도로 후배양성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李 사장은 95 ·96년,梁 사장은 97년 양복협회 부산지회장을 맡는 등 부산의 맞춤복 발전을 위한 일에는 힘을 합친다.

“국내 양복점도 외국의 유명 브랜드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두 사람은 수시로 외국에 나가 양복 패션 ·원단 등을 살피고 샘플을 가져와 끊임없는 연구를 한다.

“인체에 대한 애정이 깃든 옷은 어디에 내놔도 경쟁력이 있습니다.”(李 사장)

“명품관에 있는 외국 브랜드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품질은 자신합니다.”(梁 사장)

김관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