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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1% 북한 지원에 쓰자]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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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측 대표=쌀이 필요하지만 비닐 박막(薄膜.온실용 비닐).농약.농기구 지원도 요청합니다. 특히 수량과 시기가 중요합니다.

▶남측 대표=지원은 하겠으나 수량과 시기는 나중에 알아보죠.

▶북측 대표=그러면 곤란한데요. 우리는 계획경제 아닙니까. 남쪽에서 언제, 얼마만큼 준다는 것을 알아야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계획을 짜는데…

1995년 9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대북 쌀 제공을 위한 남북 회담의 대화록 일부다.

이는 우리의 대북 지원이 북한 경제체제에 편입, 상호 의존성을 가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남북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맞물려 있도록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유지를 보다 공고히 하는 데 유효한 방편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홍구 전 총리는 "대북 지원은 우선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궁극적으론 남북간 '경제, 혹은 복지 공동체' 구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공동체 구성을 위해선 남북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에 '자본'이 없으니 이를 남한이 맡아 대폭 확대하고, 대신 '평화'를 확보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예산 1% 지원'에 깔려 있는 논리적 배경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북한은 변하지 않는데 '퍼주기'만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95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의 지원액은 정부.민간 차원 합쳐 6억1천여만달러(6천4백여억원)다. 그러나 북한 경제 회생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고, 우리 내부적으론 '퍼주기 논쟁'이 벌어졌다. 따라서 대규모.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북한은 실질적인 경제 회복을, 남한은 긴장완화를 통해 확실한 평화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자는 것.

분단.통일비용이 엄청난 규모라는 점도 고려됐다. 전문가들은 분단비용을 현재 4백억달러 이상으로 추산한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은 "예산 1% 지원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가시화하면 위기 상황이 줄어들게 된다"면서 "그 결과 국방비에도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비용은 최소 4백억달러에서 최대 2조5천억달러로 추산된다. 물론 일부 국민 사이엔 "스스로 붕괴될 북한을 살려줘 통일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가 담당해야 할 북한 주민의 민생 안정.난민(4백만명으로 추산)대책 등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경제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는 독일이 90년 통일 후 10년 동안 매년 2천6백억마르크(약 1백50조원)를 통일비용에 투입한 것을 감안하면 실감이 난다. 특히 95년도엔 연방 예산의 4분의1인 1천3백50억마르크를 썼다. 그러나 '예산 1% 지원'이 실행되기 위해선 두 개의 큰 원칙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북한 개발의 청사진이 마련돼야 하고, 북한이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최소한 북쪽도 남쪽과 맺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왜 1%인가=올해 예산(일반회계 1백5조9천억원)기준으로 1%는 약 1조6백억원. 이는 서독이 분단 기간 동독에 제공한 연 9천9백억원과 비슷하다. 동독 지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72년 서독의 1인당 국민소득은 7천달러 정도였고, 2000년 기준 우리는 9천6백여달러다.

김명식 한국산업은행 팀장의 거시적 분석에 따르면 북한 경제가 자생력을 갖추려면 10년간 제조업에 47조3천억원, 사회간접자본(SOC) 복구에 15조원 등 약 62조5천억원이 투입돼야 한다. 매년 6조원 이상이 필요한데 통일비용 축소 차원에서 이의 6분의1 정도를 부담해 보자는 것.

1조6백억원은 북한에는 엄청난 규모다. 북한의 지난해 예산 97억6천만달러 중 기본적인 건설비는 15억8천만달러(2조5백40억원)여서 우리 예산 1%는 북한 건설비의 절반에 해당한다.

기획예산처 안일환 서기관은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국방비 등 줄이기 힘든 예산도 많아 만만찮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이만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없지 않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최근 몇년간 구조조정을 위해 1백50조원의 공적자금을 확보했고, 지난해 추경에선 교실 신축 등 교육부문에 대한 투자에 2조3천억원을 배정했다"며 "국가 전략적으로 투자할 분야라면 1조원 정도의 대북 지원 재원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세연구원 박기백 연구위원도 "예산 1%의 대북 지원이 통일에 대한 선투자, 혹은 평화 유지 비용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컨센서스가 있으면 부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영환.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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