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육사생도 체험] 원어민과 영어회화 수업…군사학 배울 땐 눈빛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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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지난달 19일 기숙사인 ‘화랑관’에서 강의실이 있는 ‘충무관’까지 약 1㎞를 이동하면서 지휘근무생도를 향해 분열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달 18일 오전 8시, 봄비 속에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육군사관학교 앞에 도착했다. 천안함 사태로 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신세대 예비 장교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막상 학교본부 앞에 다다르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생도복으로 갈아입고 고성균 생도대장(준장)에게 입교 신고를 했다. “충성! 신고합니다. 기자 박유미는 2010년 5월 18일부터 동년 동월 19일까지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동숙 취재를 명받았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 사관학교도 대학

오전 10시, 영어회화 시간. 10명의 생도가 원어민 강사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일반 대학의 수업과 다르지 않았다. 육사는 전교생 856명에 교수 170여 명으로 교수당 생도 수가 5명에 불과하다. 전공은 중국어·프랑스어·심리학·전자공학 등 14개가 있다. 2학년 때 선택한다.

낮 12시, 점심 시간이 왔다. 생도들이 3명씩 7줄을 만들더니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사는 4학년 분대장의 지휘하에 분대별로 한다. ‘역시 사관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1시30분, 국가안보론 수업. 한 생도가 ‘미국의 안보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그러자 “미국은 어떻게 해외의 자국민을 보호하느냐”는 등 질문이 쏟아졌다. 열띤 분위기에 졸음이 싹 달아났다. 여기까지는 일반 대학과 같지만 분명한 차이도 있다. 생도들은 예비장교답게 공수교육 등 군사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이봉원(58·중장) 교장은 “국내 주요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2020년까지 민간 전문가 16명을 교수로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 꼴찌와 함께 뛰는 일등

오후 3시30분, 세찬 비 탓에 취소되나 싶던 순환체육이 실시됐다. 전투복 바지에 트레이닝 상의를 입고 군화 끈을 조였다. 순환체육은 장애물 넘기, 산악·주변도로 뛰기 등 7㎞ 주파 코스다. 하지만 비 때문에 학교 뒷산의 ‘92고지(최고 높이 92m)’를 10분 안에 주파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생도들은 중대별로 출발했다. 함께 뛰기 시작했다. 갈수록 산이 가팔라졌다. 난생 처음 신어본 군화 탓에 발꿈치가 까졌다. 가뜩이나 숨이 찬 데다 뒤꿈치가 아파 더 힘들었다. 간신히 고지 부근에 다다르자 눈앞에 수십 개의 계단이 나타났다. 극한을 느낀다는 의미로 ‘천국의 계단’이라 불린단다. 여생도를 격려해가며 함께 뛰는 남자 생도가 보였다. “저 남자 생도는 원래 달리기 일등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골인점을 통과한 생도의 기록이 중대 기록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뒤처진 여생도를 격려하며 함께 뛰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 여생도

육사가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올해 여생도 경쟁률은 남생도(18.3대 1)의 두 배가 넘는 37.5대 1이었다. 현재 여생도는 전교생의 10%가량인 87명이다. 오후 10시, 여생도 4명과 마주 앉았다. 입교 동기를 묻자 4학년 양아람(22) 생도는 “여군이 많지 않아 블루 오션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4학년 이은영(22) 생도는 교대 대신 육사를 택했다. 그는 “바른 길로 이끄는 리더라는 점에서 교사와 장교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안보와 관련, 3학년 정하림(21) 생도는 “북한 관련 기사에 일부 대학생들이 무책임하게 댓글을 적는 것을 보면 놀란다”며 “그런 학생들이 입대할 경우 어떻게 정신교육을 시켜야 할지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고충도 털어놨다. “체력 기준에 남녀 차이가 없어 남생도에게 열등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생도가 입학성적도 월등하고 지휘관의 자질인 세심함과 꼼꼼함 역시 앞선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 명예

육사에는 ‘3금(금연·금주·금혼) 제도’가 있다. 4학년 이유신(22) 생도는 “신입생 때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혼자 있을 때도 삼가라는 ‘신독(愼獨)’”이라며 “명예를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6시, 기상 점호에서 생도들은 큰소리로 신조를 외쳤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예비장교들의 하루는 또 그렇게 시작됐다.

글=박유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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