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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특별구] 3. 강남 상권을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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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에는 루이뷔통.아르마니 등 수입 명품을 파는 매장이 65곳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는 1백여곳, 갤러리아 명품관에는 1백50여곳이나 된다.

그러나 신촌.영등포 등 강북에 있는 백화점에는 수입 명품 매장이 5~10곳뿐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벽걸이 TV라고 하는 PDP TV를 5천여대 팔았다. 한 대에 6백90만~1천7백만원 하는 이 TV는 절반 이상이 서울에서 팔렸는데, 그 중에서도 서초.강남지역에 있는 매장에서 팔린 물량이 75%를 차지했다.

서울에서 판매되는 외제차의 절반 이상이 팔리는 곳, 수백만원짜리 신사복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 서초.강남이다.

그러다 보니 백화점.가전제품.수입품.위스키업체는 물론이고 패밀리 레스토랑.패스트푸드점.커피체인점 업체들까지 강남상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백화점 매출자료를 보면 서초.강남권 주민들은 서울 인구의 9.1%에 불과하지만 서울지역 백화점 매출의 26.5%를 올리는 구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이영재 점장은 "강남북간의 구매력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 같다"며 "강남에서는 제품.음식.서비스가 특별하고 비쌀수록 잘 팔리는 경향이다 보니 매장과 상권이 고급화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 막강한 구매력=독일 BMW가 지난해 서울에서 판 자동차 1천6백여대(한 대에 4천5백만~2억3천만원짜리)의 54%가 서초.강남지역에서 팔렸다. 또 일본 도요타가 지난해 서울에서 판 자동차 4백81대(한 대에 3천6백만~1억8백만원짜리)의 53%가 강남권에서 팔렸다.

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8개 회원사의 서울 전시장 26개 중 61%(16개)가 강남권에 몰려 있다. 수입의류.액세서리점의 본사는 95%가 청담동과 압구정동에 있고, 수입가구점도 논현동 일대에 집중해 있다.

루이뷔통.셀린느 등 외국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LVMH코리아의 박주혜 과장은 "값이 비싸기 때문에 부유층이 밀집한 강남지역 판매에 치중한다"고 말했다.

고가 수입품이 즐비한 갤러리아 압구정점의 경우 지난해 명품매장에서만 1천6백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백화점의 정재훈 과장은 "명품관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에도 매출이 거의 줄지 않았으며 1999년부터는 연간 10~15%씩 늘고 있다"고 밝혔다.

똑같은 브랜드라도 강남점에서 팔면 강북점 매출실적을 훨씬 웃돈다.영국제 버버리와 스위스제 화장품 시슬리의 경우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올린 매출액이 신촌점의 두배에 달하고, 미아점 실적에 비하면 4.5배나 된다.

와인도 압구정점이 강북 두 점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같은 현상 때문에 업체들은 신제품이 나오면 강남지역에 공급한 다음 강북권에 물건을 댄다.

베네통코리아 관계자는 "강남지역 매출이 단연 앞서기 때문에 공급시기를 정하고 물량을 배정할 때 항상 강남을 우선한다"고 밝혔다.

잘 팔리는 브랜드도 차이가 있다.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판매하는 신사복 중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은 한 벌에 2백만원 이상 하는 아르마니 꼴레지오니(아르마니 브랜드 중 중간레벨)라는 수입 브랜드다. 반면 영등포점과 미아점에서는 제일모직의 갤럭시(70만~80만원짜리).로가디스(60만~70만원짜리)순으로 많이 팔린다.

구매력의 차이가 크다 보니 각 업체들의 마케팅도 강남고객에게 집중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명품을 소개하는 잡지 퍼스트레이디를 월간으로 발행해 3분의1을 강남고객에게 보내고 있다. 미국 최대 분유회사인 애보트의 국내법인(한국애보트)이 운영하는 마더스클럽 회원의 30%가 강남.서초 주민들이다. 금융권의 프라이빗 뱅킹 사용자들에게만 발송하는 월간 금융잡지 에퀴터블 구독자의 절반이 강남권에 살고 있다.

◇ 강남을 잡으면 한국을 잡는다=같은 서울이라도 강남권의 시장규모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다 보니 업체들의 신제품 마케팅은 강남을 타깃으로 삼게 마련이다. 위스키 발렌타인을 판매하는 진로발렌타인스는 지난해 12월 초 발렌타인 마스터스라는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강남지역을 집중 공략하겠다"고 발표했다.제품 발표회엔 이례적으로 1백여명의 강남지역 유흥업소 지배인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 회사 이원호 상무는 "출시 후 한달여 동안 판매한 12만병 중 90% 가량이 강남.서초지역에서 팔렸다"며 "강남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전국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말했다.

한국애보트가 수입해 판매하는 유아분유 씨밀락은 국내기업 제품보다 30% 가량 비싼데도 강남에서 부유층을 상대로 시장을 파고들어 성공했다. 국내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분유시장에서 이 업체는 시장점유율을 8%로 높였고 강남지역 점유율은 20%나 된다.

외식업체들도 첫 점포를 강남상권에 내 승부를 건다. TGI프라이데이스.마르쉐.까르네스테이션 등 유명 외식체인점들이 1호점을 강남에 내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베니건스는 도곡동에 본점을 열어 외식업계 전체에서 최고의 매출(한해 70억원)을 올리고 있다.

베니건스 도곡점의 박숙자 점장은 "외식업체 점포의 절반 가량이 강남 지역에 밀집해 있다"며 "강남 매출이 전체시장에서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라고 말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갤러리아백화점에 이르는 길에는 맥도날드.버거킹 등 5개 업체가 9개 매장을 내 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관계자는 "한국에 진출한 초기에 강남지역에만 12개점을 잇따라 개점한 전략이 동종 업계 매출 1위를 굳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강남에 발 붙이기 힘든 사업들=종합의류 패션몰 디자이너클럽은 동대문에서 성공한 여세를 몰아 2000년 9월 압구정점을 열었으나 고객들이 외면해 사업을 줄였다.

현대백화점에서 상권분석을 담당하는 영업기획팀 김길식 차장은 "강남권 소비자들은 보수적이고 차별성을 요구하는 성향이 짙다"며 "저가형 상품이나 매장은 강남에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품격.품질보다는 가격과 생활편의를 강조한 그랜드.뉴코아.아크리스백화점이 영업부진을 겪은 것도 강남주민들의 소비욕구를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랜드는 롯데백화점에 넘어갔고 아크리스는 폐업하고 말았다.

할인점도 강남권에서는 부진하다. 농협의 하나로마트와 외국계 코스트코가 양재상권에 있지만 강남구에는 월마트를 제외하곤 할인점이 없다.

신세계 이마트의 이인균 마케팅실장은 "강남권에는 할인점이 들어설 부지가 거의 없는 데다 땅값이 비싸고 고객성향도 백화점 지향적이어서 할인점이 성공하기 어려운 지역"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한천수 사회전문기자(팀장)

이종태.김준현.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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