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2편 베이징 달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차태연·이은주 주연의 ‘연애소설’이 상영된 베이징 신스지 영화관에서 중국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박종근 기자

지난 3일 오후 베이징의 신스지(新世紀) 영화관. 한국의 중앙일보, 중국의 차이나 필름 등이 공동 주최한 '2004 베이징 한국영화제' 개막작인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상영을 앞두고 김기덕 감독이 무대에 올랐다.

"제 영화 중엔 무서운 장면이 많아 중국엔 거의 소개가 안 됐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중국 팬들의 질문은 이 같은 김 감독의 인사를 무색하게 했다.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그리는 이유가 무엇이냐""작품 모두가 꿈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는 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이냐"는 등 질문 하나하나가 김 감독의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깔고 있었다. 더욱이 질문들 앞엔 항상 "김 감독 팬으로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을 모두 보았는데…"라는 식의 수식어가 따랐다. 자신의 영화를 거의 보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김 감독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강제규 감독의 무대 인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전쟁을 다룬 까닭에 중국 내 일반 개봉이 좌절됐지만 영화를 감상하지 못한 중국 팬은 찾기가 어려웠다. 불법이긴 하지만 복제 DVD 등을 통해 한국영화에 대한 매니어층이 이미 중국에 자리 잡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특히 이날 김기덕.강제규 감독과 배우 차태현.이은주.장신영 등이 참석한 '핸드 프린팅' 및 무대 인사 행사엔 중국 언론은 물론 일본의 NHK 방송도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여 영화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댜오위타이(釣魚台) 대주점(大酒店.호텔) 에선 한.중 영화인 100여명이 '한.중 영화산업의 이해와 상호협력 발전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열었다. 양국의 영화 제작자.투자자 등이 몰린 이 세미나에선 중국 영화 발전을 위한 사전 검열 폐지 등 민감한 문제도 거론돼 눈길을 끌었다. 중국은 지금도 외국 영화 수입을 1년에 24편으로 제한하는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인 중국 전영해외추광중심(電影海外推廣中心)의 주융더(朱德) 주임은 "이번 영화제는 양국의 영화 발전을 향한 솔직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개최했다"며 행사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유명세'를 치르듯 움직일 때마다 중국 기자들에 에워싸여 곤욕을 치렀던 강제규 감독도 "양국의 영화가 제대로 소개되려면 불법 복제물이 아닌 일반 극장을 통해야 한다"며 "이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매우 중요하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고, 또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일보 등 중국 언론도 "가장 많은 한국 영화와 또 가장 막강한 한국 영화인들이 한꺼번에 중국을 찾았다"고 문화면에 모두 크게 보도해 이번 영화제에 대한 중국 측의 관심을 대변했다. 지난 2일 개막돼 모두 12편의 한국 영화를 소개하는 이번 영화제는 6일 폐막한다. 중국 관객에게 한국영화를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입장료를 10위안(약 1200원, 보통 30~50위안)으로 낮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베이징= 유상철 기자 <scyou@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