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돈 정치' 도마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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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파산한 미국의 세계 최대 에너지 유통업체인 엔론이 그동안 정치권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쏟아부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돈 정치'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치자금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 상원의원은 11일 CNN에 출연해 "그들은 정치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말 그대로 수백만달러를 주고 또 줬다"면서 "이것이 모든 정책결정 과정을 오염시켰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정치자금은 연방선거 후보에게 직접 제공되는 '하드 머니'와 정당에 기부하는 '소프트 머니'로 나뉜다. 하드 머니는 한도가 정해져 있고 규제가 심하지만 소프트 머니는 무제한이다.

선거법은 기업이나 노조의 하드 머니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기업단위로는 소프트 머니를 제공하고 경영진은 개인자격으로 하드 머니를 내놓는다.

또 정치행동위원회(PAC)라는 합법적 모금단체를 만들어 정치인을 지원하기도 한다. 엔론은 여느 기업처럼 세 가지 방법을 다 사용했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엔론이 기부한 정치자금은 모두 5백77만달러(약 75억원). 소프트 머니 3백38만달러, PAC 1백14만달러, 경영진 기부가 1백23만달러였다.

이중 73%가 공화당으로 흘러들어가 엔론의 '친(親)공화' 노선을 잘 보여준다. 재정상태가 악화하기 시작한 2000년에도 엔론은 2백44만달러(약 32억원)를 정치자금으로 썼다.

그러나 이같은 엔론의 씀씀이도 대기업이나 거대 노조.단체 전체로 보면 중간수준이다. 1999~2000년 소프트 머니에 대한 연방선거위 통계를 보면 엔론의 1백67만달러는 14위 수준이다.

1위는 '주.군.시 피고용자 연합'으로 5백94만달러를 냈다. 기업 중 최대는 전화회사 AT&T로 3백84만달러였으며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2백38만달러, 세계적 소프트웨어 제조업체 마이크로 소프트는 2백32만달러를 여야 정당에 줬다.

주로 정당의 광고활동.후보지원 등에 사용되는 소프트 머니는 선거가 거듭될수록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0년 대선의 경우 공화.민주 양당이 거둬들인 소프트 머니는 약5억달러(6천5백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소프트 머니도 현재 개혁의 칼날을 맞고 있다. 매케인 의원과 민주당의 러스 페인골드(위스콘신)의원이 공동발의한 선거자금법 개정안은 지난해 4월 상원을 통과하고 현재 하원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은 소프트 머니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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