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 '스크린 공유' 확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한국과 일본 사이의 영화 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전에는 자국에서 만든 영화를 상대국에 수출하는 방식의 '무역'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최근엔 상대 국가의 배우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현지 촬영을 늘릴 뿐 아니라 상대 국가의 역사적.정치적 문제를 영화의 제재로 삼는 등 교류의 범위가 확산되고 있는 것.

특히 올해 월드컵 공동 개최로 양국간의 정서적 거리가 좁혀지고 영화시장의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이런 추세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 어떤 영화가 있나=18일 개봉할 '호타루'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제 2차 대전 당시 강제 징집돼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희생된 한국인 병사의 이야기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다뤘다.

가미카제로 참전했던 일본인이 옛 전우의 고향을 찾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한국인들에 대해 화해의 손짓을 내민다는 줄거리로 일본에서는 2백50만명이 관람해 히트를 했다.

자칫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예민한 소재를 과감하게 채택한 감독은 '철도원'으로 한국 관객에게 낯익은 후루야타 야스오. 제작진은 실제로 경북 안동의 하회 마을에서 영화의 마지막 20분 가량을 촬영했다.

일본에서 다음달 9일 개봉하는 '서울'은 일본의 도호영화사가 80억원을 들인 액션물로 1백% 한국에서 촬영했다. 베테랑 형사(최민수)와 일본의 신참 형사(나가세 도모야)가 서울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을 맡아 범인을 추적한다는 내용.

나가세를 제외하면 모두 한국인 배우가 출연하며 영화 '쉬리'와 일본의 액션 대작 '화이트 아웃'의 스태프들이 공동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일본 개봉에 앞서 오는 15일 서울에서 일본 언론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가 열려 이 영화에 대한 일본측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재일교포 이봉우씨가 대표로 있는 시네콰논과 한국의 본엔터테인먼트가 합작 투자하는 'KT'도 빠트릴 수 없다. 일본의 유명감독 사카모토 준지가 메가폰을 잡은 'KT'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소재로 현재 막바지 촬영 중이다.

◇ 왜 한국인가=우선 한국 영화 시장을 공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일본 영화에 대한 문호가 개방된 이후 일본 영화의 한국내 시장 점유율은 10%에도 못 미칠 만큼 예상 밖으로 맥을 못추고 있다.

따라서 한국적인 소재와 배경으로 한국시장을 돌파하겠다는 것이 일본 영화업계의 전략이다. 작년말 개봉했던 한일 합작영화 'GO'의 제작자 조유철씨는 "일본의 궁극적인 타깃은 아시아 시장"이라며 "최근 한국 영화가 동남아에서 먹히고 일본 내에서도 강세를 보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한국도 일본으로=한편 다음달 22일 한.일 양국에서 동시 개봉하는 '싸울아비'(문종금 감독)는 한국측 자본이 일본 현지에 가서 만든 작품이다.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씨가 시나리오를 쓴 '싸울아비'는 백제 멸망을 전후해 일본으로 건너간 검객들이 일본의 무사들과 대결을 벌인다는 내용. 제목 '싸울아비'는 삼국시대 무사를 지칭하는 고유의 우리말로 일본어 사무라이(侍)의 어원이 됐다고 한다.

얼마 전 아키히토 일왕이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발언한 적도 있어 일본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거리다.

주인공 최재성을 비롯해 원로 배우 남궁원, 양택조가 출연하고 일본에서는 톱스타 에노키 다카키, CF스타 우메미야 마사코 등이 출연한다. 제작비는 약 40억원으로 일본 규슈 지역에서 80%이상을 촬영했다.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