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환율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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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암시하는 지표로 환율이 가장 안성맞춤이다. 이른바 경제의 종합성적표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지속됐던 달러화 약세는 미국 경제의 쇠퇴를 배경으로 해 나타난 것이다. 같은 시기의 엔화와 마르크화 강세는 일본과 당시 서독이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징표였다.

이보다 앞서 20세기 초에는 영국의 국제수지 적자 폭이 예상외로 커지면서 금(金)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영국 경제가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대외지불에 필요한 금 보유조차 어려웠다. 금을 교환 기준으로 결제했던 19세기의 환율 결정 시스템이 이때부터 삐거덕거리며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해 이 기능은 완전히 정지됐다. 그 이후에 각국이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한 방편으로 통화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환율 인상 경쟁에 나서면서 블록경제가 형성되고 결국은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우리들의 기억에 남는 환율전쟁은 1971년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정지시킨 닉슨 쇼크다. 60년대 이후 미국은 무역수지가 악화되면서 달러의 엄청난 해외 유출로 국가 부도가 우려되는 위기에 직면했다.

닉슨 쇼크 이후 미국이 미끄러지고 일본이 일어섰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달러 약세-엔 및 마르크 강세 현상이 두드러졌다. 일본이나 서독에서는 "건강한 사람이 왜 병든 사람과 보조를 맞추며 살아야 하느냐"는 논쟁이 벌어졌다. 정치적인 환율조정으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최근 환율을 둘러싼 각국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 10년 불황을 이겨내지 못한 일본의 엔화 약세(엔低현상) 전략이 비난의 표적이 됐다. 엔화가 달러당 1백30엔 이상으로 급등(통화가치 하락)하자 중국의 반응이 날카로워졌고 한국 외환당국도 초조해졌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반응도 다를 바 없다.

일본이 엔저를 밀고 나가는 배경에 미국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두 나라의 정치.외교적 전략이 환율정책과 교묘하게 배합됐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환율은 시장이 결정한다는 것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참으로 복잡한 힘의 외교 술책이 숨어 있다.

엔화 약세와 함께 끈질기게 나돌고 있는 일본 쇠퇴론과 위기설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일본 정치가들의 확고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의 원화 환율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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