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심'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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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그리움도 윤회를 하는가 보다. 얼굴도 기억 못하는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하던 동화작가 정채봉은 아버지의 따스함을 저릿하게 느끼는 딸 리태를 남겨놓고 꼭 1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뒤를 좇아 동화작가가 된 딸은 아버지의 작품과 부녀가 주고받은 편지 등을 모아 1주기 추모집 『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심』을 냈다.

오래된 책상 서랍 속에서 찾아낸 미발표작 '친구와 함께면 만리도 간다', 대표작 '꽃다발''오세암', 여기에 정씨가 투병 시절 적어놓은 수필들, 리태씨의 동화를 함께 엮었다.

'오세암'의 떠돌이 고아 길손이처럼 정씨는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젖가슴을 만지고 싶다고 했던가. 그런데 딸은 "아버지가 단 하루 만이라도 휴가를 나온다면… 품에 안겨서 펑펑 울 것만 같다"고 적고 있다.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걷던 거리, 함께 맥주를 나눠 마시던 호프집,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주던 따뜻한 병실. 곳곳에서 그들이 나눈 정이 묻어난다. 이 세상 어느 연인이 이들보다 아름다웠을까.

이제 부녀는 한권의 책 속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딸의 친구를 두고 '빼빼'라고 놀리며 "호주머니에 돌덩이를 넣고 다니라고 해라.

바람에 날아갈지 모르니까"라며 농담을 건넬 수도없고, 딸은 아버지가 먼길 출장으로 집을 비우자 그 싫던 아버지의 방귀 냄새까지 그립더라는 엉뚱한 상상력의 사춘기 소녀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시와 동화 속에서 엄마를 찾아 헤매던 해맑은 동심은 딸에게도 내림이 된 듯하다. 그녀의 글에서 언뜻언뜻 "나의 신앙은 동심"이라던 아버지의 모습이 찾아진다.

"어느 봄날 함께 나눴던 남해안의 따뜻한 바람이 생각난다"는 수필가 피천득씨의 글과, "이다음 생에는 부디 덜 외로운 집안에 태어나 튼튼한 몸으로 이생에 못다한 일을 두루 이루기를 바란다"는 법정 스님의 글이 보태져 책을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 줬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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