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 피플] 한국동물보호협 금선란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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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대구시 남구 대명10동 남대구세무서 옆 4층 건물의 4층에 자리잡은 한국동물보호협회.다리가 부러지거나 눈이 멀고 피부병에 걸려 버려지는 동물들의 보호소다.

이곳을 운영하는 금선란(琴仙蘭 ·56 ·여)협회장은 지난 20여년간 동물보호에 앞장선 ‘동물들의 수호천사’다.현재 협회가 보호중인 동물은 개 70마리와 고양이 3백50마리.너구리 ·토끼 ·비둘기 몇마리가 있다.

그녀가 동물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년 전.1979년 가을 집 근처 하수구에서 비쩍 마르고 피부병이 심하게 걸린 새끼 고양이를 구해낸 게 계기가 됐다.애처로운 마음에 약사인 남편(조청차 ·58)에게 치료해달라고 졸랐다.주사를 맞고 음식을 먹자 ‘몽실이’라 이름 붙여진 이 고양이는 금새 생기있게 자랐다.

“그 때 당시에는 이 일이 제 평생에 걸쳐 할 일의 동기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후 차에 치어 불구가 되거나 늙고 병들어 버려진 개·고양이를 볼 때마다 데려와 이름을 지어주고 집 근처 공터에서 길렀다.

불쌍한 개 ·고양이를 맡아 키워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아이들이 “아빠가 싫어해요”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개 ·고양이를 안고 오기도 했다.그는 생김새와 맡겨진 사정 등에 따라 동물에게 깜짝이 ·짱아 ·나리 ·사랑이 등 이름을 붙여줬다.

동물 숫자가 늘어나자 그는 86년 남편 몰래 마당이 있는 허름한 단독주택(1백50평)을 사들였다.버려지는 동물이 너무 많아 이들 동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해 전혀 몰랐던 ‘주부’금씨는 수시로 물과 먹이를 주러 몰래 집을 빠져 나갔고 남편이 번 돈으로 사료와 배변용 모래 등을 사들였다.

2년쯤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과는 이혼지경까지 가는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지금은 장성해 이해하고 있지만 두 딸의 원망도 많이 들었다.

“짝사랑하는 암놈을 3년간 매일 찾아가는 고양이를 보면서 동물들의 순수하고 천진한데 감동받고 내 마음이 순화되는 걸 느껴 가족의 반대에도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녀는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91년 한국동물보호협회를 조직하고 사무실을 마련했다.본격적으로 “동물의 생존과 복지 등 권리를 지켜야 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농림부 등을 수년간 쫓아다니며 91년 동물보호법 제정을 성사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협회에는 한국동물보호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미국지부(IAKA)가 있고 미국지부장은 여동생 금계란(54)씨가 맡아 열성적으로 뛰고 있다.

그녀는 관리직원 2명(김재분 ·전대희)과 함께 매일 동물 먹이주기 ·우리청소 ·발톱 및 털깎기 ·목욕시키기를 한다.수시로 동물보호에 관한 주민교육 ·학대방지 캠페인 행사 등를 열고 있다.

맡겨지는 모든 동물에게 실시되는 불임수술과 질병치료는 협회 수의사 임규호(林圭鎬 ·37)씨가 맡고 있다.치료가 불가능한 동물은 안락사시키고 치료가 끝나면 원하는 가정에 입양시킨다.

그녀는 동물보호를 호소한다.“서로 싸우고 욕심부리는 인간이 동물을 통해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는 소신에서다.이런 마음을 이해한 남편 조씨는 수년전부터는 열성적으로 금씨를 돕는 ‘동지’가 됐다.

대구=황선윤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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