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한과 북한 어느 한쪽도 놓치지 않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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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호 04면

원자바오 중국 총리(앞줄 오른쪽)가 29일 제주도에서 개막된 제3차 한·중·일 정상회의 1차 세션이 열리기 전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묵념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중국은 천안함 사건을 보는 시각을 바꿀 것인가. 원 총리는 28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 입장을 결정하겠다. 그 결과에 따라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북한을 감싸온 중국 정부의 자세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 4명이 보는 ‘천안함 전과 후’

중국에 천안함 사건은 ‘진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북아 안보구도와 맞물려 있는 측면이 강하다. 최근 중국 인사들과 천안함 사건을 협의했던 한국의 한 인사는 “중국 측이 제시하는 의구심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대 민주주의 진영의 문제”라며 “따라서 한·중 간의 협력 및 신뢰 구축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됐다.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이 될 것을 요구받는 중국으로선 원칙적 입장을 유지하되 양쪽을 다독이는 외교적 수사만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원 총리의 방한을 전후해 중앙SUNDAY는 네 명의 중국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장롄구이(張璉<7470>) 중앙당교 교수,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사회과학원 연구위원, 장원란(姜聞然) 캐나다 앨버타주립대학 교수, 쑤하오(蘇豪) 외교학원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은 중국의 국익을 감안한 탓인지 현상을 옹호하고 유보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들의 발언을 대담 형식으로 정리한다.

-한국 정부의 천안함 진상 발표와 후속 조치를 어떻게 보나.
장롄구이: 사건 발생 후 한국 정부는 바로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는 신중함을 보여주었다. 증거들을 차근차근 수집했고, 민간인과 외국 조사요원을 참여시켰다. 공식 발표 전에는 관련국에 통보했다. 하지만 북한이 했다는 걸 증명할 ‘증거량’에 있어서 사법적인 처리를 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

뤼차오: 아주 확실한 결과라고 보지 않는다. 확실하게 북한의 소행이라고 증명하는 데 미흡하다.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결과를 보고 싶다.

장원란: 중국 정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강조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가 담긴 외교적 표현이다.

쑤하오: 한국 정부의 대북 조치가 너무 강경하다. 한국은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만약 여기에 북한이 비이성적(irrational)으로 대응해 군사적 충돌로 나갈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매우 걱정한다. 개인적으로 북한이 제안한 조사단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태를 확대시키지 않는 현명한 제스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뤼차오: 남북 대치 상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위험한 수준이다. 작은 일이 큰일로 번질 수 있는 상태다. 양측이 침착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천안함과 관련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인가.
장원란: 중국은 매우 애매(delicate)하고 어색한(awkward) 입장에 놓여 있다. 하지만 중국이 한·미를 지지하고 북한을 비난하는 국제사회에 동참한다면 나는 매우 놀랄 것이다. 미·중 전략대화에서 미국은 중국에 동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확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한 게 겨우 3주 전이다. 중국 지도부는 그를 정성껏 대접했다. 중국은 외교적인 의전을 매우 중시한다. 이 시그널을 잘 읽어야 한다. 한·미는 중국의 입장이 바뀌지 않을 걸 알면서도 중국의 동참을 요구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런 외교적인 제스처는 대북 압력이 되기 때문이다.

장롄구이: 사건의 전말이 더욱 자세히 드러날 경우 중국이 기존의 입장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중국의 공식 입장을 말해주는 기준은 중국 외교부의 발언이다. 중국 외교부의 최근 발언은 얼마 전과 약간 차이 난다. 외교부 대변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어떠한 행동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했다. 이것은 명확한 표현이다. 만약 이번 사건을 북한이 한 것이라면, 중국은 북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과 한국이 오도한다면 그것 역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도 문제 해결 방법의 하나라고 본다.

쑤하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특별하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이 시점에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 중국은 북한과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중국이 이 순간 북한에 등을 돌린다면 북한은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정말 큰 불안은 그 순간에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이 이번에 취하는 자세와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한·중 관계는 이미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국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북한의 내부불안정이다. 북한에 혼란이 생기면 한반도가 혼란에 빠지고 이것은 중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뤼차오: 이번 사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태도를 표명하는 자체가 ‘책임 있는 대국’이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중국은 이미 북한의 설명을 요구했다.

-남북한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전략 기조는 변화할 것인가.
장원란: 중국은 어느 한쪽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중국에 있어 천안함 사건은 ‘정의(justice)’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문제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재자 역할을 하고자 한다.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동시에 북한이 급변사태에 빠지는 것은 중국의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다.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의 길을 걷게 하려는 게 중국의 꾸준한 외교정책이다.

쑤하오: 북·중 관계는 변하지 않는 지속가능(sustainable)한 것이다. 북한이 중국의 모델을 본받아 개방의 길로 가기를 원한다. 지난해 5월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중국 내에서는 북한에 대해 불쾌한 감정이 흘렀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강한 압력을 행사하자고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자세를 취하는 상황에서 중국까지 그럴 경우 북한이 수세에 몰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은 중국 나름의 정책을 취하기로 했다. 그것은 북한을 장기간에 걸쳐 원만하게 개방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뤼차오: 남북한 모두 유엔 회원국이다. 중국이 민감한 상태에 있는 양국 사이에서 ‘등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본다. 북한과 전통 우호관계(특수국가 관계)를 두텁게 하면서 동시에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장롄구이: 2008년 11월 북한의 노동신문은 개혁·개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거절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는 외부의 시각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중국의 외교안보 라인에서도 대북 정책을 둘러싼 다른 입장들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북한 비핵화 노력이 실패한 이후의 지역안보 위험지수를 보는 시각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실패하면 동북아 다른 지역으로 핵이 확산돼 동북아 안보에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본다. 반면 북한이 핵을 가지면 한반도에 모종의 힘의 균형과 안정이 형성될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 이것을 믿는 학자들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있다고 본다.

장원란: 중국 내부에도 북한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최종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을 보면 이들은 주류가 아니다. 알다시피 중국의 최대 관심은 북한 내부의 불안정 해소다. 북한 급변사태 이후에 북·중 국경지역에 몰릴 난민과 한반도 불안정을 심각히 우려한다. 서방에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자주 언급하는데, 북한도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우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북한도 중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6자회담 재개의 전망은.
장원란: 중국은 주의 깊게 사태 추이를 관찰할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중국이 나서서 모든 이들을 진정(calm down)시키는 것이다. 중국은 유엔 제재가 시작되고, 한반도에서 워게임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한 입장에선 한·미 공동 군사훈련 실시를 ‘훈련을 가장한 전쟁’이라고 오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중국의 다음 동작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조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자. 6자회담에 대한 비난이 많지만 그것을 대체할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6자회담의 틀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롄구이: 6자회담은 이미 죽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영원히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6자회담으로 북핵 해결은 어렵다는 게 이미 증명됐다. 오히려 북한은 6자회담을 6년 동안 이용하면서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 목표가 무산된 후에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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