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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연인들' 푼수 역 김형자 "닭살연기 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당했다, 당했다! 자긴 내 뽀뽀에 당했다!"

불꺼진 연극무대 한켠의 어두컴컴한 분장실. 한 여자의 '급습'에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한다. 여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나 잡아봐라'식 말투로 남자에게 애교를 떤다.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장난 같은 애정표현이 아니다. 50대 여자와 30대 남자의 세대를 뛰어넘은 불같은 사랑이다. 보는 사람이 느끼할 법도 한데 둘 사이는 끝없이 진지하기만 하다. '사랑에 나이 차가 어딨냐'는 듯한 이들의 당당함이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중견 연기자 김형자(51)씨가 늦사랑에 빠지는 50대 노처녀로 변신했다. MBC 시트콤 '연인들'에서 20년 연하남(공형진)과 좌충우돌식 사랑에 빠지는 푼수 연기로 출연, 제2의 전성기를 예감하게 할 정도다.

"아휴, 내가 연기한 거지만 징그러워서 못 보겠어요. 이 나이에 사랑에 빠진 모습을 표현하는 게 어디 쉽겠어요." 이렇게 능청을 떨지만 정작 순수하고 열정적인 노처녀 연기가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간 깐깐한 시어머니나 부잣집 사모님 역할만 해왔으니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게 신이 날 만도 하다.

그녀는 지난해 12월 25일분 '나를 사랑한 여배우'에서 박상면을 유혹하는 중견 연극배우로 드라마에 합류했다. 연극배우를 꿈꾸는 공형진과 함께 오디션장에 온 박상면을 보고 한눈에 반해 엽기적으로 박상면을 따라다니는 역할이다.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농익은 코믹 연기에 "아줌마 연기 짱이다"며 인터넷에 20대 팬클럽이 생겨났을 정도다. 끝내 박상면을 포기했지만 앞으로 공형진과 '연극'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이를 초월한 사랑을 이루게 된다.

김형자씨는 올해로 연기 인생 30주년을 맞았다. 1970년대엔 정윤희.김창숙 등과 함께 '예쁜 여배우과'에 속하며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세월과 함께 조연의 자리에 머물렀다. 본격 시트콤 출연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기 인생을 확 바꿀 전환점이기도 하다.

처음엔 젊은 연기자들이 웃긴 얘기를 하는데도 이해가 안돼 심한 세대차를 느꼈다. 하지만 금방 젊은 감각을 되찾았다. 그녀 말대로라면 "이제는 내 말투나 행동에 다들 뒤집어지는 분위기"라는 것. 녹화장에서 손가락을 허공에 대며 "그만, 그만, 그만!"하는 포즈를 취할 땐 스태프.연기자들이 모두 웃느라 NG를 내기 일쑤다.

믿기지 않지만 남자와의 키스신도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멜로드라마에서 주인공의 키스신이 엄격하게 제한됐기 때문이란다.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말을 맛있게 한다'고들 해요. 같은 대사라도 어떻게 해석하고 영혼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거든요." 시트콤의 경우 애드립 대신 철저히 대본 대사를 따라야 하기에 그녀의 장기는 더욱 빛을 발할 것 같다.

드라마처럼 현실 속에서도 '소녀 같은 독신'인 그녀는 연예계에선 소문난 골프광이기도 하다. 10년째 운동삼아 해온 골프가 수준급이라는 평이다.

박지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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