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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요즘 문화 코드를 움직이는 두 정신, 게릴라·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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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한민국 컬처 코드
주창윤 지음
21세기북스
247쪽, 1만5000원

지난 세기 저물녘부터 손에 먹물 묻힌 자라면 한 마디씩 했다. 새로운 천년은 ‘문화의 세기’가 될 거라고. 실제로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문화는 드세게 요동쳤다. 인터넷 문화가 정치·경제 등 사회의 큰 줄기를 압도했고, 문화 콘텐트가 산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를테면 문화는 새천년의 새로운 ‘안방 주인’이 됐다.

이 책은 바로 그 ‘안방 주인’의 면면을 차근차근 뜯어봤다. 새 천년의 첫 10년간 우리 사회를 주도했던 문화 현상을 다섯 가지로 간추렸다. 이른바 ‘대한민국 컬처 코드’다.

우선 유목민 코드. 2000년대의 역사는 인터넷의 역사로 바꾸어 불러도 무방할 테다. 지난 세기 말부터 슬금슬금 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은, 이제 새로운 세기의 문화 주체로 올라섰다. 책은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을 유랑하는 개인들이 문화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미니홈피·블로그·UCC 등이 확산되면서 문화를 소비하던 개인들이 문화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들 ‘사이버 유목민’은 인터넷을 개인의 놀이 공간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종종 인터넷 카페 등에서 조직화를 하고, 사회 여론을 주도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모여 아주 짧은 시간 황당한 행동을 한 뒤 흩어지는 ‘플래시몹’은 인터넷으로 인해 집회가 투쟁이 아닌 놀이문화로 바뀐 대표적 사례다. 사진은 ‘시체놀이’ 장면. [중앙포토]

다음은 참여 코드. 인터넷 문화가 빚어낸 주체가 유목민이라면, 이들의 행동 패턴이 ‘참여’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는 클릭을 통해 참여를 퍼나르며 사회적 목소리를 냈다. 월드컵 거리 응원을 비롯해 촛불시위 등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군중 집회는 모두 인터넷 세대의 자발적 참여에서 비롯된 문화 현상이다. “참여 세대의 등장으로 투쟁이 아닌 놀이로서의 집회 문화가 생겨났다”는 게 지은이의 진단이다.

몸과 섹슈얼리티 코드는 엇비슷한 문화 현상을 이끌었다. 새 천년 들어 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동성애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남성이 패션·화장품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떠올랐다. 얼짱·몸짱·꿀벅지·S라인 등 몸과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말이 유행한 것도 마찬가지다. ‘루키즘(lookism·외모지상주의)’의 확산이 우리 시대의 주요 문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상상력의 코드. 주로 TV·영화 등에서 비롯된 사극 열풍이다. 사극이야 지난 세기에도 유행했지만, 책이 주목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다. “사실보다 의미가 중요해지면서 팩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실제 ‘대장금’ ‘상도’ ‘주몽’ 등 지난 10년간 인기를 끌었던 역사극은 대부분 상상력이 넘쳐나는 작품들이었다. 역사의 권위를 해체하려는 문화적 움직임이 읽힌다.

지은이는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의 문화 코드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이다. 권력과 제도의 틈바구니에서 대중이 마치 놀이를 즐기듯 문화를 생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려진다, 인터넷으로 무장하고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21세기형 문화 대중의 모습이. 새 천년 초입의 문화 현상을 진단하고,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묻어나는 책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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