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암행어사 출두요~ 성동구 주민 구정 감시 맹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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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시 성동구에 사는 주부 한명희(韓明希.38)씨는 거의 매일 주민자치센터인 '동민(洞民)의 집'에 들러 감시의 눈을 부라린다.

자치센터 20곳에서 운영하는 헬스기구의 안전상태나 에어로빅.꽃꽂이 등 교양 프로그램의 질(質) 등을 꼼꼼히 따져 평가하는 '주부 암행어사'이기 때문이다. 신분을 숨기고 둘러보기 때문에 동사무소 직원이나 교양강사 등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韓씨의 수첩에는 ▶러닝머신 센서기 교체▶교양프로그램 다양화▶개방시간 확대 필요 등 자신의 의견이 빼곡이 적혀 있다. 韓씨는 이런 현지조사 결과를 다른 주부 암행어사 40명과 함께 매달 구청측에 전달, 구정(區政)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韓씨는 "아이들 셋을 돌보느라 짬을 내기가 힘들지만 주부들이 나서 살맛나는 동네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나섰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의 평범한 가정 주부들이 일선 행정을 확 바꾸고 있다.

구청.동사무소를 돌며 공무원들의 잘잘못은 물론 마을의 개선점 등을 조목조목 감시하는 이들 덕분에 썰렁하던 주민자치센터에 활기가 넘쳐나고 공무원들 또한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다.

성동구 내 주부 암행어사는 공무원들의 친절도를 평가하는 '구정 평가단' 50명과 주민자치센터 활동을 점검하는 '구정 패널단' 40명 등 모두 90명.

지난해 8,9월 각각 발족했다. 여가 활동공간으로 바뀐 동사무소 자치센터에 대한 주민들의 불편이 많고, 공무원들 또한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급증하자 구청측이 주부 감시 요원을 구성한 것. 성동구청 총무과 이재영(李在榮)계장은 "주민 눈높이에 맞는 행정을 펴기 위해 도입한 주민 평가제에 주부들의 호응이 예상 외로 컸다"고 말했다.

이들 주부 암행어사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우선 운동기구 등이 모자라 이용자들이 하루 10여명에 불과하던 동민의 집에 시설을 보완하고 새 단장을 하도록 구청측에 건의,모두 개선시켰다. 초.중생들이 방과 후 한양대 자원봉사학생들로부터 공부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방과 후 교실'도 행당1동 등 세곳에 만들었다.

특히 행당2동 동민의 집은 인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36평 정도의 청소년 독서실을 만들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게 하고 무료 이.미용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2만8천여명에 불과하던 이용자가 지난해 말에는 4만1천여명으로 50% 가까이 늘어났다.

주부 암행어사들은 공무원들의 의식도 바꿨다. 지난해 8월부터 구청 10층에 마련된 '전화평가실'에서 매일 구청과 동사무소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이것 저것 물어보며 직원들의 태도(속도.인사말.끝인사 등)를 평가, 우수 부서와 직원을 선정했다. 그 결과 성동구 내 모든 직원들은 '친절 공무원'으로 탈바꿈했다. 평가단으로 활동하는 이예선(李禮先.38)씨는 "관청 문턱이 아예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행정 혁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동구청은 지난해 11월 행정자치부 후원으로 시민단체 '열린사회시민연합'과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등이 공동주최한 '제1회 전국 지방자치센터 박람회'에서 전국 70개 자치단체 가운데 최우수상(행정자치부장관상)을 받았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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