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직 마감 줄리아니 '뉴욕 영웅'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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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뉴욕은 내일도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루돌프 줄리아니(57) 뉴욕 시장이 9.11 테러 직후 시민들에게 했던 연설의 한 구절이다.

전대미문의 테러로 절망에 빠졌던 많은 뉴욕 시민들은 줄리아니의 연설을 듣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며 용기를 되찾았다.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된 양복, 진흙으로 만신창이가 된 구두로 테러 현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침착하게 구조작업을 지휘하던 줄리아니 시장은 뉴욕 시민들의 가슴 속에 영웅으로 새겨졌다.

그런 줄리아니가 8년 간의 시장직 수행을 마치고 1일 0시(현지시간)를 기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93년 시장에 취임한 뒤 뉴욕을 '평화와 풍요'의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에 나서 93년 1천9백27건이던 살인 발생건수를 올해 6백32건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올해 뉴욕의 전체 범죄 발생건수는 그의 취임 초기인 93년(43만여건)보다 3분의2 가량이 줄어든 15만8천여건에 불과했다. 특히 맨해튼 중심부에 자리잡았던 마약 밀매업자들이 자취를 감추게 한 것은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힌다.

뉴욕시 통계에 따르면 93년 3백50만개이던 뉴욕시 전역의 일자리 수가 지난해 4백만개로 증가했다. 복지 수당을 받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저소득층이 69만여명 가량 줄었고, 거리 한편에서 구걸하던 노숙자.부랑아들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당연히 줄리아니의 뛰어난 시정 운영 능력 덕분이라는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줄리아니는 99년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와 경합하다 다음해 5월 전립선암에 걸려 중도하차했다. 지난해는 영화배우 출신인 아내 도나 하노버와 헤어졌다. 또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단속으로 일부 소수 민족 출신자들이 피해를 보면서 여론의 화살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줄리아니가 보여줬던 발빠르고 침착한 대응은 뉴욕 시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는 세계무역센터(WTC)가 붕괴하자 2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테러 현장을 찾아 희생자 구조와 복구작업을 독려했다.

소방관.경찰관들의 장례식이 열리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찾아가 그들의 살신성인에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최근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유년 시절 "평생을 악과 싸우겠다"고 결심한 한 소년이 자라 뉴욕시민과 미국인들에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고 타임은 평가했다.

뉴욕=신중돈 특파원,서울=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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