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이사진 배상판결'로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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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영 판단을 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된다. 특히 무제한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현행 대표소송제도는 재검토돼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는 28일 삼성전자 이사들에게 회사에 9백여억원을 배상하라는 수원지법 판결에 대한 경제계 입장을 이렇게 정리해 공동 발표했다.

모든 의사 결정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인데, 실패했다고 거액을 물어내라고 하면 어떤 경영자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의욕적으로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판결 내용은 이날 업계의 화두였다. 위법 사실이 아닌 경영상의 문제로 이사들이 심판을 받은 데 대한 반감도 컸다.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 3분의1만 성공해도 잘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실패하지만 성공한 사업이 실패를 보상하고 이익을 남기는 것"이라며 "기업에선 너무나 흔한 실패 사례를 찾아내 책임을 묻는다면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패한 사업에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면, 성공한 사업에 대해서는 이사들에게 엄청난 포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업가들도 있다.

그러나 공개적인 반응은 조심스럽다. 개별 업체들은 "우리 회사는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 외에는 삼성전자 판결과 관련해 모두 입조심에 들어갔다.

자칫 회사 이름이 거론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이 집단소송제 도입에 기름을 붓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소액주주 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 개인들로부터 피해를 배상받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득이 된다.

반면 집단 소송은 소송을 제기한 개인들에게 회사와 이사들이 제소자들에게 손해액을 물어줘야 한다. 이에 따라 기업마다 집단소송제 대비 작업이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법률 내용과 주의사항 등을 담은 지침을 만들어 최근 사장.부사장 등을 대상으로 교육했다.

또 법률 관련 부서 인원을 1백50명에서 2백명으로 늘렸고 판.검사 출신 변호사 충원에 나섰다.

참여연대의 모니터링을 받고 있는 SK텔레콤은 최근 '모든 기업 활동은 사전에 법률 검토를 받는다'는 원칙 아래 법무팀 인력을 15명에서 22명으로 늘렸다. LG전자도 최근 법무팀 소속 임원을 1명에서 3명으로 늘렸다.

또 이번 삼성전자 재판에서 회의록 등 의사결정 과정을 입증할 자료가 불충분해 삼성전자의 패소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회의록 작성과 감사 절차 등에도 신경쓰고 있다.

양선희.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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