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해도 너무한 윤시 수사 경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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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해 수지 金 살인혐의로 윤태식(尹泰植)씨를 조사했던 경찰관 두명이 尹씨로부터 당시 가치로 4억원에 이르는 패스21 주식을 받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억대의 액수도 그렇지만 경찰관들이 살인 혐의자의 약점을 잡아 갈취했다는 점에 아연할 따름이다. 그들의 수법은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였다.

지난해 尹씨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외사분실 池모 경위와 金모 경사는 내사가 중단된 지 한달쯤 후인 지난해 3월 尹씨에게 "한번 만나자"고 연락했다.

尹씨를 서울 신촌의 다방으로 불러낸 수사관들은 "수사가 대충 종결될 것 같다. 그런데 尹회장님 회사를 알아보니 아주 좋던데 주식 1천주씩을 액면가(주당 5천원.당시 시세 주당 20만원)로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인지는 알았던지 두 수사관은 형의 장인.처남 등 명의를 빌릴 사람들 명단까지 준비해갔다. 다음날 수사관들은 尹씨로부터 '주식보관증'을 받아냈고 며칠 뒤 尹씨 회사를 찾아가 주식을 받았다. 당초 말했던 액면가가 아닌 공짜였다.

당시 尹씨는 수사관들이 만나자고 해 겁을 잔뜩 먹었지만 경찰관들이 뜻밖에 "주식을 달라"고 하자 "이젠 살았구나"하고 안도했다고 한다.

지난달 수사중단 사실이 불거진 직후 경찰측은 "수사관들은 일계급 특진까지 염두에 두고 의욕적으로 수사를 했으나 국정원의 압력으로 중단됐다"고 해명했었다. 일계급 특진을 놓쳤으니 4억원이라도 챙겨야 했단 말인가.

보름 전 이무영(李茂永)전 경찰청장이 수지 金 살해사건의 경찰 수사를 중단시킨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을 때 경찰 내부에선 볼멘소리들이 터져나왔다. "경찰은 국정원의 농간에 휘말린 것 뿐인데 억울하다"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을 현실로 보여준 '투 캅스'의 행위는 살인사건을 대공사건으로 왜곡 조작한 국정원과 다를 것이 없다. 이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범죄다. 경찰 총수는 살인사건임을 알면서도 수사를 중단시키고,수사경찰관은 '이게 웬 떡이냐'며 약점 잡힌 살인 혐의자를 갈취했으니 틈만 나면 외치던 '경찰개혁'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아직도 '투 캅스'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찰이 정말 안타깝다.

강주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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