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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서 김기영 감독 눈에 띄어 출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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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근 리메이크된 영화 ‘하녀’의 1960년 원작에서 하녀(올해 작품에서 전도연 역에 해당)를 연기했던 배우 이은심(69)씨가 50여 년만에 언론에 입을 열었다. 재일동포 출신인 이씨는 서구적인 외모로, 21살에 출연한 두 번째 영화 ‘하녀’(김진규·주증녀 주연)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중산층 가정에 하녀로 들어가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며, 담배를 피우거나 쥐꼬리를 맨손으로 잡는 등의 모습으로 거침없는 팜므 파탈(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매력적인 여성)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출세작이 곧 사실상 은퇴작이나 다름없게 된 불운의 배우이기도 했다. 작품 내용에 격분한 부인 관객들이 영화를 보다 “저 년 죽여라”고 욕설을 퍼붓고, 길거리에서 이씨의 멱살을 잡는 등 위협을 가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뒤 이씨에겐 에로 이미지의 배역만 들어와 이 때문에 염증을 느껴 곧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씨는 64년 네 번째 영화 ‘신식할머니’를 끝으로 데뷔 5년 만에 은퇴했다. 62년 ‘사랑도 슬픔도 세월이 가면’에 출연하며 만난 이성구 감독과 결혼했고, 82년 브라질로 이민을 떠난 뒤에는 한 번도 고국을 찾지 않았다.

이씨는 이번 리메이크와 관련해 방한이 추진됐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고 e-메일 인터뷰로 대신했다. 이씨는 리메이크 소식에 대해 “너무 뜻밖이고 기뻤다. 전도연씨의 연기는 본 적 없지만 훌륭한 배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로는 이국적 외모의 이씨는 “다방에서 친구와 커피를 마시던 중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 안성기(당시 8세, 주인집 아들로 출연)의 부친을 통해 출연을 제안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파격적인 팜프 파탈 연기에 대해서는 “감독님은 직접 연기 시범을 보이면서 조금 모자라는 여자이기 때문에 큰 감정은 필요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씨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관객들에게 봉변당한 적은 없으며 오히려 칭찬을 많이 받았다. 실물과 극중 역할이 전혀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보람과 흐뭇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은퇴와 결혼 역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으며, 단 김기영 감독은 “(배우로서) 좋은 기회를 놓친다고 무척 안타까워했다”고 회고했다. 브라질에서 1남1녀의 어머니로 평범하게 살아온 이씨는 “연기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한국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으나 훌륭한 연기자들과 영화기술의 발전이 인상적”이라고 답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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