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전문가가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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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필자는 예비역 육군 병장이어서 해군은 잘 모른다. 과학 지식도 고교 때까지 배운 게 전부다. 당연히 천안함 비(非)전문가다. 그래도 암초설 신도들이 깊이 믿고 따르는 ‘4대 의혹’이 궁금했다. 전화로 접촉한 대학교수와 예비역 해군 장교들의 답변을 소개한다.

①어뢰 폭발인데 까나리가 안 죽었다?=까나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낮에만 활동하고 밤엔 모래 속에 꼭꼭 숨는다. 수심 3~5m에 주로 살지, 사고 해역의 수심 40m는 다소 깊은 편이다. 까나리는 보통 12㎝ 남짓하다. 참고로, 거센 조류 때문에 천안함 산화자 6명과 금양호 선원의 시신조차 못 찾았다. 유류품도 해안가로 거의 밀려오지 않았다. 설사 까나리 수천 마리가 떼죽음해도 흔적 찾기란 쉽지 않다. 바다 청소부인 괭이갈매기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가 까나리다. 백령도엔 20만 마리의 괭이갈매기가 산다.

②얼굴에 물방울만 튀었다?=물기둥과 버블제트는 공교롭게(?) 한겨레신문이 4월 8일 특종 보도한 내용이다. “해병대 초병이 100m가량 치솟는 물기둥 같은 하얀색 섬광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다른 초소의 초병에 따르면 천안함이 역브이(Λ)자로 솟구쳤다”며 버블제트까지 시사했다. 물기둥이 합동조사단 발표 때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건 오해다. 물기둥을 못 본 견시병과 달리, 초병은 처음부터 “물기둥 같은 것을 봤다”며 일관되게 진술했다.

③침몰 장면의 TOD가 있다?=TOD는 적이나 이상물체를 감시하라고 비싼 돈 주고 설치한 것이다. 우리 편 천안함만 쫓아다니며 감시했다면 오히려 직무태만이다. 초병을 영창 보내야 한다. 거꾸로, 어뢰 폭발 순간에 딱 맞춰 TOD를 찍었다면 대공 혐의까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해병대 초병이 사전에 적과 내통해 정확한 어뢰 발사 시각을 알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④너무 멀쩡한 ‘1번’?=우리 해안 어느 양식장에도 부이마다 유성 매직으로 쓴 번호가 수년간 선명하게 남아있다. 기름 성분의 유성매직은 알코올 같은 용제(溶劑)에 녹지, 바닷물엔 안 녹는다. 그렇지 않다면 태안이나 미국의 멕시코만 기름 유출은 그냥 두면 될 일이다. 기름이 바닷물에 녹는다는, 천지개벽할 학설이 한국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암초설 전문가들은 연구 대상이다. 한 분은 두 달간 어뢰용 알루미늄을 바닷물에 넣어 녹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고온·고압의 폭발로 생기는 비결정성 산화알루미늄의 개념을 깜빡하신 모양이다. 재료공학 석학들이 밑줄까지 치면서 강조한 대목인데….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전문가는 “북한 잠수함은 야간 전투능력이 없다”고 단언하셨다. 연어급 잠수함이 야간투시장비를 장착했다고 자랑하는 북한의 카탈로그가 무색해진다. 나머지 두 분은 명예훼손으로 피소됐으니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야당이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10년간 집권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비과학적인 가설만 쫓아다니다 스텝이 꼬여버렸다. 진짜 전문가들이 울고 갈 일이다. 이젠 야당도 믿고 따르던 전문가들을 되짚어보았으면 싶다. 그래도 믿는다굽쇼? 차라리 다른 전문가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4월 1~2일 중앙일보에 등장한 백령도 어민들이다. 특히 머구리(잠수부) 이용선씨가 압권이다. “암초는 무슨… 벼르던 북에 한방 맞은 거지.” 지금 봐도 흠잡을 데가 전혀 없다. 어디 이만큼 탁월한 학설을 제시하신 분이 계셨던가.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