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이회창총재의 권력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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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권이 '창(昌.이회창)대 반(反)창'구도로 바뀌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DJ)이 민주당 총재직에서 떠난 이후 변화다. 'DJ대 반DJ'를 대신한 판도다.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李총재가 이길 것이냐, 아니냐의 관심이 이제 DJ실정(失政)논란을 제치고 있다.

*** 대세론과 인기의 간격

'창 대 반창'논란의 핵심은 '이회창 대세론'이다. 대세론은 李총재를 누를 만한 다른 대선 주자가 없다는 상황인식이다. 대세론은 돋보인다. 반면 李총재의 개인 인기, 지지율은 그렇지 않다. 여론조사에서 저조한 지지율은 꿈틀댈 기미가 없다. 대세론과 인기와의 간격이 클 수밖에 없다. "李총재가 진짜 좋다"는 화끈한 지지가 적은 탓이다. "DJ정권이 꼴보기 싫다"는 반사 이익이 대부분이다.

지지 정서 내부의 갈등현상이다. 그것은 "李총재에게 국민통합을 이뤄낼 국가 경영능력이 있나" "포용력이 부족하다는데 왜 고쳐지지 않나" "1인 지배의 제왕적 총재라는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는가" "李총재가 잡으면 호남편중 대신 엘리트 편중이 되는 게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 부족으로 분석된다. 李총재는 자신의 대선 재수(再修)경력만큼이나 오래된 이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여론의 주문을 만족시키는 정치적 순발력이 부족한 때문일까. 판사 경력의 차가운 인상이 선입관으로 굳은 탓일까. 성탄절 때 산타클로스로 분장하고 어린이들과 어울린 스타일 변화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인가.

대다수 국민들은 李총재의 리더십 정체, 국가 경영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원칙.법치(法治).논리 등 그의 강점으로 꼽히는 이미지가 리더십과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대세론과 지지율의 눈에 띄는 격차는 李총재가 국가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것은 진정한 권력의지의 부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권력의지는 마키아벨리적 술수가 아니다. '헐벗고 배고픔에서 허덕이는 우리 민족을 구하겠다'는 박정희의 사명감, '위대한 문민 시대를 열겠다'는 YS의 투지,'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몰아내겠다'는 DJ의 집념에는 진정한 권력의지가 드러난다.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열정이다. 그것이 시대 정신에 맞고, 독선과 명분에 빠지지 않을 때 국가적 성취를 이뤄낸다. 李총재의 이미지 침체는 진정한 권력의지의 부족 때문이다.

권력의지는 치열한 역사 인식속에서 다듬어진다. 그의 역사관이 정리됐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박정희시대의 평가도 DJ만큼 명쾌하지 못하다. "근대화가 꿈만 같았을 때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공로는 지대했고, 그것을 이룩했다"는 게 DJ의 평가다. 경제발전의 공(功)이 민주화 억압의 과(過)를 누른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이다. 그런 국민들의 눈에 李총재가 이 부분에서 머뭇거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내년 대선은 박정희의 산업화부터 양金의 민주화시대까지 40년을 결산하는 역사의 분수령이다. 그 과정속의 국민의 역량과 땀, 갈등과 증오를 용광로에 넣어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짜내라는 게 시대의 요구다. DJ정권의 위험스런 역사실험 탓에 더욱 골이 팬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치, 사회 분열을 씻을 수 있는 리더십을 바란다.

그런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권력의지의 그릇이 李총재한테 있는지가 불투명하다는 게 여론조사에 깔려 있다. 지지율과 대세론 차이의 핵심 요인은 그것이다.

*** 국가경영 그림 보여줘야

권력의지의 그릇이 커야 시대 흐름을 자신의 리더십으로 소화할 수 있다. 비전의 실천의지가 넘쳐야 '제왕적 총재의 인상에서 벗어나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보이라는 여론의 변신 요구를 흔쾌하게 수용할 수 있다.

李총재가 권력의지를 새롭게 다듬지 못하면 대세론과 인기의 간격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대선 판세를 흔드는 변수로 등장할 것이다. 이인제(李仁濟)고문을 포함한 민주당 주자들은 그 간격을 활용해 역전의 기회를 삼으려 할 것이며, 박근혜(朴槿惠)부총재의 도전 공간도 커질 것이다.

박보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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