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간첩' 우려가 현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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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위장간첩 사건은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에도 북한 당국의 대남공작이 계속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탈북 귀순자가 급증하는 시점에서 탈북자 사회를 파고드는 새 수법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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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탈북자인가=우선 남한 내 탈북자 사회에 대한 정보 파악이 필요했을 것이란 게 당국의 판단이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하는 탈북자에 대해 북한은 체제위기 차원에서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특히 최근 들어 정착지원금 같은 정부의 지원 규모가 탈북자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해 불만이 고조되고 있어 이들 사이에 반정부 분위기 등을 조성하려 시도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당국은 북한 측이 탈북자의 한국행 루트를 이용할 경우 안전하게 공작원을 남한에 정착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본다. 탈북자의 급증으로 입국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이 어려운 점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468명의 집단입국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탈북자를 상대로 제대로 된 입국심사나 탈북동기.경위조사가 어려워졌다. 해마다 탈북자 사이에 중국 조선족이 포함되는 사례가 늘고 있고 468명 가운데에도 조선족이 포함돼 추방됐다.

올해 입국 탈북자 수는 9월 말 현재 151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늘었다. 이대로라면 올해 2000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탈북자 수는 1999년 100명을 처음 넘어선 데 이어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 2002년 1139명에 이어 지난해에는 1281명을 기록하는 등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 과감해진 침투수법=북한은 간첩 이씨를 다른 탈북자와 함께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진입시켰다. 현지 대사관 요원에게서 심사를 받은 이씨는 동남아를 거쳐 입국한 뒤 국군정보사령부와 국정원.경찰 등으로 짜인 합동신문조의 조사를 받았다. 또 경기도에 있는 탈북자 수용시설 하나원에서 두 달간 정착교육도 받았다. 관계자는 "공관 진입에서 제3국 경유와 국내 입국.신문과정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와 국가기밀이 북한에 유출됐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씨에게 공작 암호명과 약정음어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그를 밀입북시켜 초대소에 머물면서 밀봉교육을 받게 하는 등 전형적인 대남 침투공작을 벌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구멍 뚫린 탈북자 관리=탈북자 급증으로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주택지원과 정착금 지급에만도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더구나 해외여행에 나서는 탈북자를 규제할 마땅한 방법도 없다. 이를 막을 경우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왔는데 이런 식으로 대우하느냐"며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과거 관할경찰서 보안과에서 이뤄지던 탈북자 동향 점검 등도 어려워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1일 "탈북자 사이에 극히 소수지만 불순한 세력이 끼어 있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라며 "전체 탈북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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