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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들 '돌격 앞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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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은행의 전쟁이 시작됐다. 1일 국내 주요 은행장들은 전날 열린 씨티은행 출범 리셉션을 지켜본 뒤 일제히 생존을 건 경쟁을 예고하며 전열 정비에 나섰다. 세계 1위 은행그룹인 씨티은행에 이어 세계 2위인 HSBC까지 제일은행을 인수해 국내 안방시장에 뛰어든다면 토종은행과 외국계 은행의 한판 승부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씨티은행 리셉션은 세계 1위 은행의 위세를 느끼게 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과 국내 시중은행장은 물론 미국.네덜란드.싱가포르 대사,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등 예상보다 훨씬 많은 15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리셉션에 참석한 금융계 고위 인사는 "세계 1위 은행의 국내 진출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생각보다 훨씬 뜨겁다는 데 놀랐다"며 "국내은행이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예상보다 빨리 시장을 잠식당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주요 시중은행장들의 발언은 이런 국내은행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란 얘기다.

◆ 사활을 건 경쟁 예고=그동안 국내 금융계는 국민, 신한+조흥, 우리, 하나 등 4개 국내은행과 제일.외환.한미 등 3개 외국계 은행이 4강3약의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넘어가고, 제일은행마저 HSBC의 인수가 임박하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여기에 외환은행까지 국내든 외국계든 대형은행에 합병될 경우 국내 은행계는 생존을 건 무한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우리금융지주 유용주 전략기획팀 부장은 "씨티은행과 HSBC의 국내시장 진출로 국내 은행권은 '빅6' 체제가 됐다"며 "국내 금융시장의 규모로 보아 6~7개의 대형은행이 모두 살아남기는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1~2년간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은행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외국계 은행 행보에 촉각=국내은행은 씨티와 HSBC가 예금.대출금리 파괴전략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낮은 외국계 은행이 시장을 효과적으로 흔들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국내은행은 이런 전략을 무작정 따라갈 수 없어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부자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 뱅킹(PB) 분야도 토종은행과 외국계 은행이 첨예하게 맞붙을 분야다. 국민은행은 이에 대비해 현재 16곳인 PB점포를 내년에는 23개로 늘릴 계획이다. 우리은행도 70개인 점포 내 PB센터를 올해 말까지 220개로 늘리고, 내년에는 384개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 전열 정비하는 국내은행=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29일 미국 출장에 나섰다. 미국 내 30위권 대학의 경영학석사(MBA) 출신들을 뽑기 위해서다. 씨티와 HSBC 등 외국계와 경쟁하자면 인력수준도 그에 맞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강정원 국민은행장도 4명의 씨티은행 출신 부행장을 뽑아 '맞불작전'에 나섰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앞으로 경쟁은 과거와 달리 덩치가 아니라 서비스의 질 싸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부 금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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