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계정' 뒤에 꼭꼭 숨은 정부 빚, 1조 3천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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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들어 9월까지 통합 재정수지(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흑자는 8조1천억원이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나랏 돈을 본격 투입했기 때문에 지난해 같은 기간(18조5천억원)보다 흑자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흑자'다.

그러나 정부가 자랑하는 흑자 재정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빚'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재정경제부가 제출한 '2002년도 비료계정의 한국은행 차입금 원리금 차환에 대한 국가보증 동의안'이라는 긴 이름의 안건이 통과됐다.

비료관리법에 의해 비료계정을 설치·운영하고 있는 농협중앙회가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비료계정의 한국은행 차입금 3천7백억원의 상환을 연장해달라는 내용이다. 이같은 보증동의 과정은 1979년 적자 투성이였던 비료계정이 한은의 발권력에 기대기 시작한 이래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비료계정의 내년 예상 누적적자는 1조3천6백21억원.한은(3천7백억원)과 농협(9천9백21억원)에서 빌린 돈으로 손실을 메울 계획이다.

88년 정부의 비료사업은 중단되고 농협중앙회의 비료계정은 적자가 해소될 때까지만 유지하기로 했지만 그동안 정부가 빚을 갚은 실적은 부진하다.

정부는 95년 비료관리법을 고쳐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으로 비료계정의 적자를 보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95년부터 적자를 줄이는 등 비료계정의 적자해소 대책을 고민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의지는 퇴색돼 올해에는 겨우 26억원을 순상환하는데 그쳤다.

박봉수 국회 재경위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의 의지가 약해 비료계정의 적자 누적이 조기 해소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며 "정부는 예산회계법에 규정한 세계잉여금의 국채·차입금 우선 상환 원칙에 따라 재정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비료계정의 한국은행 차입금을 갚고 누적적자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비료계정이나 공적자금처럼 보이지 않는 정부 빚이 많아 적자인지 흑자인지 재정 기조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금융기관에는 충당금을 쌓으라고 하면서 왜 스스로는 잠재적인 부실 요인을 별도 관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 비료계정이란

비료계정은 과거 정부가 식량증산 정책의 일환으로 농민에게 비료를 싸게 공급하기 위해 만든 별도 계정이다.

국회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정부 예산이 아니라 정부 업무 대행기관인 농협을 활용해 '딴 주머니'를 찬 셈이다. 비료회사로부터 정상가격으로 비료를 구입해 농민에게 싸게 공급한 결과 비료계정 적자는 계속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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