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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교민 강수열씨 "이민생활 13년에 남은 건 몸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이민생활 13년에 이제 남은 것은 제 몸뿐입니다."

지난주 아르헨티나 폭동사태로 애써 일군 가게를 약탈당한 강수열(36.사진)씨는 "고생하면 언젠가 큰 부자가 될 것이란 꿈이 산산조각났다"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40㎞ 떨어진 에스코바르시에서 지난 5년간 옷장사를 해온 강씨는 자신의 지금 처지를 믿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19일 오전 인근 판자촌 주민들이 하나 둘씩 상가가 밀집한 거리로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했단다. 처음엔 혼자 힘으로 가게를 지켜보려 했으나 폭도들이 인근 슈퍼마켓 철문을 트럭으로 밀어붙이고 물건을 몽땅 훔쳐가는 것을 보고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몇가지 물건을 승용차에 밀어넣고 가게를 떴다. 폭동이 진정된 뒤 돌아와보니 25평 가게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강씨가 동생과 함께 부모를 모시고 이곳으로 투자이민을 온 것은 1988년. 당장 생계를 꾸릴 일이 급해 교포가 하는 옷가게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몇해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은 미국으로 다시 터전을 옮겼다.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구멍가게.봉제업 등을 전전하는 고생을 하다보니 어느 정도 기반을 잡게 됐다. 한때는 옷가게를 세개나 운영하며 한해 10만달러를 벌기도 했다. 그 때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11시까지 일해도 힘든 줄 몰랐다.

그러다 이민 10년째인 98년에 위기를 맞았다. 담뱃불로 인해 가게 하나가 홀랑 타버린 것. 이 즈음 아르헨티나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장사가 전같지 않았다. 올 초에는 두번째 가게도 문을 닫았다. 한개 남은 가게를 이번 폭동 때 날렸으니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은 젊기에 기회는 또 올 것"이라며 재기를 다짐했다.

에스코바르=주정완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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