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심리학] 12. 연주자의 몸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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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최근 내한한 핀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올리 무스토넨은 연주 내내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몸을 흔드는 등 현란한 무대를 선보였다. 마치 지휘하듯 왼손을 흔들어대다가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피아니스트들도 있다.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몸짓에는 단순한 오버 액션이나 쇼맨십이라고만 보아 넘길 수 없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피아니스트들은 악구의 끝부분에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장식음을 연주할 때는 상체를 추켜세우면서 뒤튼다. 악보를 보고 연습할 때와 달리 암보해 연주할 때는 양손이 아니라 온몸으로 연주한다고 해야 옳다.

이들 제스처는 관객에게 음악작품의 구조나 연주자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같은 연주자가 연주하는 같은 작품이라도 CD를 들을 때보다 음악회에 가서 들을 때 훨씬 이해하기 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음악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라면 눈을 감고 들어도 타이밍이나 강약의 섬세한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초심자들은 연주자의 몸짓을 보고 비로소 음악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지휘자의 동작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2세 때부터 공개 연주를 중단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연주나 녹음 때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비디오를 보면, 무대에선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면서도 유연한 몸짓을 보여주는 데 반해 스튜디오 녹음에선 신체 동작이 거의 미미하다. 몸짓도 음악 외적인 전달 수단이기 때문에 청중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굴드는 언젠가 "연주하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한 선배 피아니스트의 녹음도 듣고 있으면 그의 '몸짓'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말했다.

슈만은 "리스트가 커튼 뒤에서 연주한다면 시적인 감흥을 상당 부분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9세기 음악가들이라고 해서 같은 취향을 소유한 것은 아니다. 글링카는 리스트를 가리켜 '뉘앙스를 부풀리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연주자의 몸짓도 시대에 따라 유행이 바뀐다. 스승이나 동료 연주자들의 무대 매너를 보고 배우는 경우가 많고 청중의 반응에 따라 '신체 언어'를 취사선택하기 때문이다. 몸짓을 통한 연주자와 청중의 대화는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리스트의 과장된 몸짓은 요즘 취향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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