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때 국왕은 뭐 했나” 태국 입헌군주제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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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개월이 넘도록 태국 수도 방콕을 마비시켰던 반정부 시위 사태가 정부군의 강제진압으로 일단락됐지만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 공방으로 태국의 정정은 여전히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형사 재판소는 25일 테러 선동혐의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반면 반정부 시위대는 현 정부가 유혈사태에 대한 직접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책임 공방의 화살은 급기야 절대 금기의 영역인 푸미폰 아둔야뎃(83·사진) 국왕에까지 날아갈 정도로 어지러운 상황이다. AP통신은 “시위 사태는 끝났지만 왜 국왕이 이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나, 앞으로 입헌군주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둘러싼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반군주제를 주장하는 웹사이트가 수십 개씩 생겨나고, 학계에선 입헌군주제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다”고 전했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선 국왕 모독은 불경죄로 몰려 징역 15년형에 처해진다. 격세지감의 변화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이번 사태에서 국왕이 보여준 태도에서 비롯됐다.

푸미폰 국왕은 88명이 숨지고 1800명 이상이 다친 이번 유혈사태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병원에 입원한 이후 정치와 관련된 발언은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64년 재위 기간 19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푸미폰 국왕이 조정자로 나서면서 태국 정정은 풍파 없이 안정을 유지해 왔다.

AP는 이번에 국왕이 침묵한 것은 정부와 시위대의 주장이 크게 엇갈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줬을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통신은 “국왕이 침묵을 깨고 행동에 나섰거나 앞으로 나서게 된다면 국왕의 권위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며 “이 경우 입헌군주제는 더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학자는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어 국왕이 나선다 해도 더 이상 신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그의 침묵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왕실 지지를 천명한 옐로 셔츠에 의해 국왕이 정치적으로 선점당하는 바람에 균형자 이미지가 상당 부분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도 있다.

입헌군주제 문제가 본격 제기되면서 푸미폰 국왕과는 달리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와치라롱컨(57) 왕세자의 자질 시비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1974년 헌법 개정 때 공주도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명문화한 것도 왕세자의 자질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태국 정치 전문가인 호주 국립대 크레이그 레이널드 교수는 “태국 사회의 변화에 맞춰 군주제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해 여론 주도층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리폰 사와스데(출라롱콘대) 교수는 “국왕의 침묵은 왕실이 정치 격변에 개입하지 않는 선례가 됐다”며 정당 정치 등 제도 안에서 해법을 찾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멍든 경제 회복 시급=태국 정부는 시위 사태로 인해 1500억 바트(약 5조6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 초 4∼5%로 예상됐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시위 사태로 인해 1~1.5%포인트가량 낮춰졌다. 무엇보다 국내총생산(GDP)의 7%를 차지하는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관광입국자는 1550만 명으로 예상됐으나 1300만 명에 그칠 전망이다. 아피싯 웨차치와 정부는 시위로 피해를 본 개인 사업자들에게 5만 바트(186만원)씩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국영·민영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에 저금리로 대출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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