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를 만나다 ① 쿠르트 뷔트리히 (2002년 화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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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정식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맘껏 뛰놀고 자유롭게 사고해야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쿠르트 뷔트리히(가운데) 박사가 자신을 찾은 세종과학고 3학년 장필근(왼쪽)·김원재군과 함께 했다. [황정옥 기자]

지난 18일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2010 WCU 인터내셔널 콘퍼런스’. 전국 17개 중·고교 학생 71명이 노벨상 수상자 쿠르트 뷔트리히(Kurt Hermann Wuthrich·72), 로저 콘버그(Roger D. Kornberg·63)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큰 업적을 이룬 비결이 궁금합니다. 교수님과 같은 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권형준(천안 북일고 1)군의 질문에 뷔트리히 교수는 “(그 나이 땐) 맘껏 재미있게 놀고 자유롭게 생각하라”고 대답했다. 이날 뷔트리히 교수는 “연구개발은 실패의 연속이다. 이를 즐겁게 여겨야지 절망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실패는 자극”이라며 “자주 실패하고 자주 시도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고 강조했다.

과학자 전기 읽으며 닮으려 노력해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뷔트리히 교수가 석좌교수로 있는 연세대 연구실을 찾았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로 뽑힌 세종과학고 3학년 김원재·장필근군이 함께 했다.

뷔트리히 교수가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농촌에서 자란 그는 물고기를 잡고 농작물을 키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 경험이 과학자가 되고 연구개발에서 성공하게 한 힘입니다.” 그는 유년시절 독서를 많이 했다. “특히 과학자의 생애를 다룬 책들이 생각의 깊이와 폭을 성장시켜 줬어요.”

학창시절엔 축구에 미치기도 했다. 대학 때 전공을 화학으로 바꾸려 하자 담당 교수가 ‘운동선수가 공부하면 질 떨어진다’며 거절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교수를 찾아가 화학을 공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진로를 바꿨죠.”

부모는 어땠을까. “내가 뭘 해도 간섭하지 않았어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배려하셨죠.” 그의 부모는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 숙제도 도와준 적이 없다. 그러나 부모는 프랑스어·독일어·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덕에 뷔트리히 교수는 4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외국어를 많이 알면 지식과 경험을 쌓는데 유용합니다.”

기술 발전 속도 맞춰가려면 기초에 충실할 것

그는 학생들이 화학·물리·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미리 어렵게 생각하고 접근해서”라고 지적했다. “어려우니까 피해도 된다고 생각해 쉽게 포기하는 거죠. 과학에 대한 재능을 기르려면 ‘재미있다’는 마음부터 가져야 해요.”

그는 연구 중 알게 된 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68년~91년까지 무려 20년 넘게 고민과 실험을 반복한 끝에 실마리를 찾았다는 얘기를 꺼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하면 시대의 변화나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할 수도 있어요.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과학 꿈나무들에게 기초과학을 충실히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내가 학창시절 배운 기초과학 지식이 지금도 활용됩니다. 기본 원리를 충실히 배우면 기술 발전이 아무리 빨라도 그에 맞는 응용력을 기를 수 있어요.”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는 …

▶ 1938년 스위스 출생

▶스위스 베른대, 바젤대 대학원(화학박사)

▶스위스 연방공과대 고분자생물리학과 교수

▶1982년 핵자기공명장치를 이용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할 수 있는 과학기술 개발과 학문적 기초를 마련. 1984년 실험을 통해 단백질 구조 규명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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