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원불교 원음방송 "메리 크리스마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아기 예수 탄생! 함께 축하해요.'

제목만 보자면 기독교 방송의 성탄 특집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건 원불교 방송인 원음방송(서울 89.7㎒,부산 104.9㎒,전북 97.9㎒)이 성탄을 맞아 기획한 특집 프로그램이다. 24~25일 이틀간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된다.

특정 종교 방송이 다른 종교의 축제일에 특집 방송을 편성하는 경우는 거의 전례를 찾기 어렵다. 시절에 맞춰 축하 메시지 정도 내보내는 거라면 모를까 기획 자체를 종교간 화합에다 맞춘 것은 신선하다.

종교 종합전시장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종교가 함께 존재하는 나라에서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선 긋고 담 쌓기 바빴던 과거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저 이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더 흥미롭다. 내용을 보자면 정말 원음방송의 프로그램이 맞나 싶을 만큼 파격적이다.

원불교 장응철 교정원장, 조계종 총무부장 원택 스님 등의 성탄 축하 인사를 방송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김동완 목사의 감사 인사까지 준비했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기독교계의 봉사 현장을 찾아가는가 하면 다일 공동체 최일도 목사를 초대해 성탄절의 의미까지 들려준다.

"프로그램 말미에는 찬송가를 배경으로 성탄절 기도를 올리겠다"는 제작진의 의지를 들으면서 프로그램이 그저 형식에 그치지 않음을 재확인했다. 송지은 PD는 "기독교의 사랑을 만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종교를 초월해 모든 사람들이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원음방송 애청자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1998년 익산 원음방송이 개국 때부터 종교 간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성탄 특집은 그간의 지속적인 종교화합 노력이 한층 더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타종교가 아니라 이웃종교 입니다'라는 원음방송의 목소리가 성탄을 맞아 더욱 낭랑하다.

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