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기적의 신기술 믿을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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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대사회는 치열한 기술경쟁에 의해 그 생존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기술력 향상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을 육성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경험과 우연에 의한 기술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체계적인 과학 발전을 위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과학을 외면한 기술개발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과학적 분석을 소홀히 한 탓에 유용하다고 믿었던 신기술이 오히려 큰 재앙을 가져왔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정용 냉장고와 에어컨에는 CFC라는 물질을 사용한다. 1928년 뒤퐁은 유독한 암모니아와 달리 아무런 냄새와 맛이 없고, 독성도 전혀 없는 CFC라는 냉매를 '프레온'이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CFC는 우리의 식생활과 주거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기적의 신물질이었다.

그런 CFC가 환갑도 넘기지 못한 1986년부터 세계적으로 그 생산이 금지돼 버렸다. 냉장고와 에어컨에는 유용한 CFC가 성층권에 올라가면 오존층에 구멍을 만든다는 뜻밖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1946년에 처음 개발됐던 2,4-D는 농작물과 사람에게는 독성이 없으면서 잡초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해주는 신비의 제초제였다.

그 안정성을 믿었던 미국 정부는 2,4-D와 2,4,5-T를 섞어서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고엽제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고엽제는 베트남의 밀림을 성공적으로 제거해 주었지만, 놀랍게도 많은 참전용사들에게 불치의 병을 안겨주고 말았다.

제초제의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생산과정에서 수용액을 너무 뜨겁게 가열했던 탓에 극미량의 맹독성 다이옥신이 부산물로 만들어진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다이옥신이 생기지 않는 낮은 온도에서 생산된 2,4-D와 2, 4,5-T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단편적인 효과만으로 기술을 평가해서는 안되고, 안전성이 확인된 기술이라 하더라도 생산에서 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분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과학적 증거를 요구한 덕분에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예도 있다.

1957년에 독일의 제약회사가 개발했던 탈리도마이드가 그런 경우다. 입덧을 진정시켜주는 안전한 신약이라는 제약회사의 일방적인 주장만 믿고 신약의 시판을 허용했던 나라에서는 수천명의 기형아가 태어나 버렸다.

그러나 미국 FDA의 캘시 박사는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증거를 요구했고, 그 덕분에 미국의 임산부들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과학의 중요성을 믿었던 한 사람의 신념이 수를 알 수 없는 많은 생명을 불행에서 구해준 셈이었다.

새로 개발되는 기술은 모든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확인해야만 한다. 그렇게 노력해도 안전성을 완벽하게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 현대 기술의 특징이다.

이윤추구가 최고의 목표일 수밖에 없는 기업으로 하여금 신기술의 과학적 원리를 분명히 밝히고, 신제품의 생산.소비.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요구하는 것은 정부와 국민의 기본적인 책임이다. 밝은 과학의 시대에 과학적 진실은 밝히지 못하고 기적만을 앞세운 회색의 신기술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李悳煥 <서강대 교수.이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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