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오직 히딩크뿐!" 감독 흔들기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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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차범근 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 기용이나 훈련 방법.대응 전략 등에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 부딪쳤다.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조중연 협회 전무는 물론 기술위원들과도 불편한 관계였다. 결국 대회 도중 기술위원회가 주축이 돼 감독을 경질하는 최악의 결과를 빚었다.

기자들의 선수 숙소 출입을 제한하고 감독 인터뷰도 지정된 시간 외에는 허용하지 않아 언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심지어 특정 선수 기용을 놓고 일반 팬들이 기자를 사칭해 차감독 집에 전화를 해 "왜 그 선수를 뺐느냐"고 항의하는 일까지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대표 감독이었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국내 코치진과 '물과 기름' 사이였다.

한국 코치들은 비쇼베츠 감독의 지휘 스타일에 불만을 품고 "한국 축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비난하기 일쑤였다.축구인들도 대부분 '한국식 축구'를 강조하며 "역시 외국인에게 감독을 맡기면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가 하면 겨울 전지훈련을 위해 찾았던 한 공설 운동장에서는 관리인이 "하루 2시간 이상은 운동장을 쓸 수 없다"고 해 비쇼베츠 감독을 돌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행운아'다. 물론 초기에는 불성실성과 나쁜 성적,그리고 너무 오래 지속된 선수 테스트에 대해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축구협회의 전폭적 지지는 초지일관이다.

우선 기술위원회는 히딩크 감독의 든든한 지원자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을 포함한 기술위원들은 히딩크 감독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보는 주지만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감독에게 전권을 준다.

한국 코치들과의 불화도 생각할 수 없다. 핌 베어백 코치와 얀 룰프스 분석관 등 네덜란드에서 코치진을 불러왔고, 박항서 코치 등 한국 코치 3명은 오로지 선수들 트레이닝에만 신경을 쓴다.

언론과의 껄끄러운 관계도 원천 봉쇄된다. 언론담당관제가 새로 생겨 네덜란드 외교관을 지낸 허진 담당관이 기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공식적인 자리에만 참석하면 된다.

극성 팬들이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접근할 방법이 없다.

한국 축구의 고질병이었던 '감독 흔들기'를 적어도 히딩크 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전력 누수 없이 모든 힘을 합쳐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손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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