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바람 나게 사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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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더러운 도둑놈!"이라고 공공연하게 욕한다. 작은 도둑은 큰 도둑을 "나라를 털어먹는 날강도!"라고 숨어서 욕한다. 죽을 맛인 민초들은 "모두가 도둑놈들!"이라고 중얼대며 도둑공화국에 사는 신세를 한탄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런데 도둑들이 도둑질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힌 것은 누구일까? 지금 거리마다 불가사리가 활개 치며 돌아다니고 있다.

*** 불가사리 활개치는 세상

불가사리란 고려가 망할 무렵에 나타나서 쇠붙이를 닥치는 대로 다 먹어치우던 괴물인데 어떠한 무기를 써도 소용이 없고 오로지 불에 태워야만 죽일 수가 있었다. 그런데 현대의 불가사리는 권력과 돈을 마구 집어삼킨다.

그리고 부패, 무능, 독재, 인권유린, 은폐 및 조작, 경제파탄, 나아가서는 사회기강의 총체적 붕괴라는 위기를 배설물로 쏟아낸다.

현금으로 가득 찬 사과상자들이 과연 선물일까? 받은 사람도 없이 허공에서 사라졌을까? 로비란 무엇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그게 웬 말인가?

홍수 같은 그 배설물 때문에 온 누리에 악취가 진동하고 실업자가 넘친다. 민초들은 모가지가 비틀린 풍뎅이처럼 삶의 방향감각을 잃은 채 밤낮으로 술에 젖어 비틀거린다. 위스키.소주.맥주의 연간 소비량을 보라. 러브호텔이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원조교제도 교제인가?

과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 것인가? 민초들이 나름대로 좀 더 멋지게 인간답게 한 세상을 사는 방법은 없을까? 신바람 나게 살아가는 길은 없을까?

그야 물론 있다. 그것은 불가사리들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풍토를 민초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돈과 권력을 그들이 멋대로 마구 집어삼킬 수 없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민초들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지금까지의 편향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사실 대부분의 지도층뿐만 아니라 민초들 자신마저도 돈벌이에 눈이 멀고 권력에 빌붙어 덕을 보고 싶어하는 일종의 불가사리라고 할 수 있다.먹고 사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통속적으로 말하는 억, 억 하는 그런 엄청난 액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재벌 회장이 평범한 시민보다 반드시 더 행복하거나 더 훌륭하지는 않다.

큰 나라의 대통령이 작은 나라의 대통령보다 더 위대한 것도 아니다. 중국 대륙의 무능하고 부패한 황제나 폭군보다는 오히려 조선의 세종.영조.정조 등의 왕이 더 위대하다. 높은 지위라는 것도 사실은 무의미하다.

독재시절에는 정직한 면서기나 초등학교 교사가 대통령보다도 더 훌륭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역대 대통령의 동상을 거리에서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점을 근본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사회가 생존경쟁을 위한 먹이사슬이라는 전제 아래 인간관계를 먹느냐 먹히느냐의 관계로 보았다. 그래서 돈과 권력의 독점을 향해 무자비한 경쟁을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회란 '상호 서비스의 사슬'이라는 전제 아래 내가 더욱 잘 살기 위해서는 남도 더욱 잘 살게 만들어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서비스를 내가 먼저 남에게 제공하겠다고 하는, '서비스 먼저 제공하기 경쟁'을 해야만 한다.

*** 서비스 제공하기 경쟁을

서비스란 일에서 나온다. 그런데 일이란 묘한 것이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하는 일은 고달프지만,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고 신나는 것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그래서 남을 위해 서비스를 하면 할수록 삶은 더욱 더 신바람이 나게 될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고 주저앉지는 말자.

남을 위해 서비스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일거리가 갑자기 사방에서 눈에 뜨일 것이다. 남을 위한 서비스에는 은퇴도 없다.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가진 것이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아무리 가난해도 시간과 따뜻한 말과 사랑은 얼마든지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李東震 (작가,전 외교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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