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올해의 책 특집 과학 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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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과학도서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들을 끊임없이 지적으로 자극하면서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출간된 과학도서 중 눈에 띄는 걸작은 단연 『E=』과 『게놈』(매트 리들리 지음, 김영사)이다.이 두 저작의 공통점은 '상대성이론'과 'DNA'라는 교양과학서의 고전적인 소재를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스타일로 말을 건다는 데 있다.

특히 『E=』는 아인슈타인이나 상대성이론 자체가 아니라 '누구나 들어봤지만 거의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너무나 궁금한' 공식인 E=2의 탄생 배경과 의미를 전기 형식을 빌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런 형식은 아인슈타인이 왜 그토록 위대한 과학자인가를 역사적 맥락에서 보여주는데 더없이 좋은 장치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상대성이론 관련서와는 달리 공식의 탄생을 넘어 성장과 발전에까지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공식의 진가가 바깥 세상에 널리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애쓴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까지 세심하게 챙긴 점 또한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E=을 탄생시킨 것은 아인슈타인이었지만 그것을 키운 것은 20세기 수많은 과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과학출판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모브』(사이먼 가필드 지음, 웅진닷컴)나 『호두껍질 속의 우주』(스티븐 호킹 지음, 까치)처럼 갓 출판된 책이 빠르게 번역돼 국내에도 큰 시간차 없이 출간되는가 하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칼 세이건 지음, 김영사)이나 『인간의 그늘에서』(제인 구달, 민음사)처럼 고전들이 뒤늦게 번역되기도 했다『궁궐의 우리나무』같은 '참신한 기획과 전문가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진 국내저작들이 선보인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내년에도 출판계가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과학저술가와 전문번역가를(그저 찾는 것이 아니라 키우고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꾸준히 '발굴'한다면, 과학서적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도 점점 커지리라 믿는다.

『E=』처럼 하나의 주제를 흥미롭게 기술하면서도 '깊고 진지한 지적 심연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 수 있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정재승 <고려대 연구교수.『과학 콘서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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