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선정 인문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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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올해는 과연 어떠한 책들이 한국인의 교양을 풍요롭게 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일까. 중앙일보 북섹션 '행복한 책읽기'팀은 올해 1월13일부터 12월 15일까지 프런트면과 기획리뷰면을 통해 그 주의 일품요리로 가장 비중있게 다뤘던 책의 목록을 보여드립니다.

매주 새로 출간되는 수십 권의 책 더미 속에서 함께 읽고 생각해보길 바라며 골랐던 책입니다. 그만큼 올 한해 우리 독서시장에서 화제가 됐던 책들과 출판의 큰 흐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책 선정 기준은 시의성.교양.완성도.대중성 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지식 수입국가에서 지식 수출국으로의 비약 가능성'.

조동일 교수의 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과 정수일씨가 펴낸 두권 『씰크로드학』 『고대문명 교류사』를 올해의 인문서로 선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저술의 함량은 물론이고, 근대 이래로 일방적인 문화 수신국가였던 구조를 역전시킬 만한 저작물이라는 판단에서다.

두 종의 책은 문학사와 동서교류사라는 별도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구조면에서는 닮은꼴이다. 즉 근대 전후 문학의 흐름과 교류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있고, 이를 통해 일반이론(grand theory)의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문적 구상 자체가 크지만, 그건 시대적 요청에 대한 문명사적 화답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던 서구 편향의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라는 얘기다.

조교수는 그동안 따로 놀았던 문학사와 세계 역사의 사회사를 유기적으로 한꺼번에 거머쥐는 방식으로 이 책을 풀어나갔다. 물론 서구 문학에 따라다녔던 프리미엄은 깨끗하게 무시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이 '외면'이 아니고 '승부'형태로 책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이론적 선례로 작용해온 헤겔과 루카치 등의 문학이론과 한판승부를 펼치는데, 이 대목은 논리적일 뿐더러 당당하기조차 하다.

신스크리트어 문명권, 아랍어 문명권, 한문문명권, 유럽문명권 등 4개의 문명권역을 오가며, 문학과 소설 장르의 앞날을 전망하는 그의 작업은 결국 유럽문명권 중심의 근대학문과 문학논의의 대안으로 치닫는다.

정수일(무하마드 깐수)씨의 작업은 그가 복역 중 집필작업을 했다는 점에 대한 관심 등과 달리 순수하게 학문적 성취만으로도 상찬(賞讚)받을 만하다.

근대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묻어 있는 우월감(서구)과 패배의식(제3세계)을 모두 벗어나 환(環)지구적 문명교류의 통로를 발견하고 이것을 일반이론으로 올려놓으려는 학문적 원력(願力)은 놀랍다.『씰크로드학』이 새로운 학문의 그릇이자 내용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조교수와 정씨의 작업은 호흡이 방대하지만 서술은 일반인들이 읽어내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 또 하나, 이들 작업이 국내 학계와 큰 연고없이 개인적 형태로 튀어나왔다는 점도 음미해볼 만하다. 그건 두 종의 작업이 국내 학계 전체의 수준이 아니라 예외적 성취라는 확인이다.

조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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