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10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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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 무렵 김양이 무주의 도독으로 임명 된지 이미 2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신라 문무왕 18년에 도독으로 부임하였던 천훈(天訓)과 더불어 신라 때의 명환(名宦)으로 손꼽히고 있는 김양은 2년의 세월동안 성민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었으며,『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처럼 '정무를 잘 다스려 명성이 있었던'지방장관이었다.

원래 무진주는 백제의 땅으로 옛 이름을 노지(奴只)라고 하였다.

해적 이소정은 백일도를 탈출한지 닷새만에 김양이 도독으로 있는 무주, 즉 노지로 숨어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소정의 뒤를 닷새 동안 쥐도 새도 모르게 이창진은 밟고 있었다. 이창진은 이곳 지리에 밝아 이곳 일대의 형세를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어보고 있어 이소정이 갈 수 있는 길목을 귀신처럼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창진은 해적 이소정이 최종적으로 접선하는 탈을 쓴 악마의 실체를 밝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옛 백제인의 자색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장보관에 가죽신을 신은 악궁인 염문. 복숭아나무로 만든 세피리의 명인인 염문이 저승사자인 방상시의 탈을 쓴 악마임을 밝혀낸 순간 이창진 자신도 소스라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창진도 염문이 피리를 불면 사람들이 슬피 울고, 하늘을 날던 새도 날개를 접고 가지 위에 앉는다는 소문을 익히 전해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창진은 며칠동안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였다.

혹시 자신이 잘못 보았는가. 몇번이고 확인하였지만 이소정이 숨어들어간 곳은 틀림없이 염문의 집이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이창진은 염문을 체포하기로 하였다. 겉으로는 피리를 부는 악궁인이었으나 실제로는 노비를 팔아넘기는 인간백정이었고, 방상시의 탈을 쓰고 노예를 약탈할 때면 잔인무도한 해적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으므로 이창진은 무장한 부하들을 이끌고 염문의 집을 급습하였던 것이었다.

그때 염문은 피리를 불고 있었다. 그 노래는 이창진의 귀에도 낯익은 곡조였다. 그것은 무등산곡(無等山曲)이었다. 이 노래는 백제 때부터 내려오는 백제악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등산은 광산현(光山縣) 동쪽 십리에 있는 진산(鎭山)인데 하늘같이 높고 큰 것이 웅장하게 50리에 걸쳐있다…하늘이 가물다가 비가 오려고 할 때나, 오랫동안 비가 오다가 개려고 할 때면 산이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수십리까지 들린다. 속설에 의하면 무등산곡이 있는데 백제 때 이 산에 성을 쌓아서 백성들이 서로 믿고 편안히 살면서 즐겨 부른 노래라고 한다."

염문이 불고 있는 곡조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옛 백제인들이 무등산에 성을 쌓고,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즐겨 불렀던 바로 그 무등산곡이었던 것이었다.

염문은 피리를 불고 있다가 이창진을 비롯하여 무기를 빼어든 한 떼의 군사가 자신의 집을 포위하고 다가오자 피리를 멈추고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태연자약한 염문의 모습에 분노한 이창진이 그 즉시 칼을 빼어들고 호통을 쳐 말하였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정녕 모르겠느냐."

그러나 염문의 얼굴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시나이까. 소인이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러시나이까."

그러자 이창진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집을 샅샅이 뒤지거라. 그러면 이집 어딘가에 쥐새끼 한마리가 숨어있을 터이니. 그놈이 바로 국법을 어기고, 섬에서 탈출하여 도망친 해적일 것이니라. 이처럼 국법을 어기고 도망친 죄수를 숨겨 은닉하여준 죄 또한 막중하려니와 네놈은 정체를 숨기고, 대왕마마께오서 엄금한 노비를 약취하여 몰래 팔아먹으려는 인륜을 거슬린 대역죄인이니라."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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