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지 金 사건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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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87년 홍콩에서 피살된 수지 金(본명 金玉分)의 간첩 누명이 15년 만에 벗겨졌다.

'여간첩 수지 金의 남편 납북미수사건'이라던 당시 안기부의 발표가 장세동(張世東.얼굴)안기부장이 주도한 조작극이었다는 것이 19일 검찰의 최종 결론이다.

검찰이 재수사를 결정한 지 20개월 만에 실체가 벗겨진 것이다. 또 지난해 경찰의 사건 수사 중단 배경에도 국정원측의 은폐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장세동씨 조작 지시=87년 1월 5일 金씨의 남편 윤태식씨가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면서 조작이 시작됐다. 대사관측은 尹씨의 신병을 현지에 있던 안기부 직원에게 넘겼고, 이 직원은 "尹씨의 납북미수 주장은 신빙성이 없고 자진월북 가능성이 있다"고 국내 본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張씨는 사건을 대북 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호재로 판단, 국내외 기자회견을 적극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張씨는 또 尹씨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며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측이 기자회견 주선을 거부하자 안기부 해외담당 부국장 張모씨를 현지에 파견해 尹씨를 태국 방콕으로 데리고 가 8일 "간첩 수지 金에 의해 납북될 뻔했다"는 기자회견을 열도록 지시했다.

尹씨는 9일 입국한 뒤 안기부 조사에서 "부인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했다. 그러나 장세동씨는 대북관계 등을 고려해 사건을 덮었다. 尹씨를 풀어주면서도 범행 실토를 우려해 동향을 감시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이 파악한 조작의 전모다.

◇ 경찰 수사 중단=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 김승일씨는 지난해 2월 15일 경찰이 수지 金 사건을 수사한다는 첩보를 입수, 이무영 경찰청장을 찾아갔다."그 사건은 尹씨가 말다툼 끝에 부인을 목졸라 살해한 살인사건이다. 언론에 공개되면 대북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수사 중단을 요청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李전청장은 곧 수사 중단을 지시했고,경찰은 다음날 수사 중단 보고서를 내고 사건에서 손을 뗐다. 검찰은 19일 李전청장과 金전국장에 대해 범인도피.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사건 조작 당사자인 張전부장 등에 대해서는 범인도피죄 등의 공소시효(3년)가 끝나 사법처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尹씨는 지난달 13일 살인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 애끓는 수지 金 가족들=수지 金의 고향인 충북 충주에 사는 가족들은 이날 눈물을 쏟아냈다. 여동생 김옥임(40)씨는 "가족들이 화병으로 이래저래 죽고난 뒤 누명을 벗으면 무엇하느냐"며 "사건은폐에 관련된 사람 모두 언니 제사 때 와서 속죄해야 할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올케 이명수(52)씨는 "한가족을 풍비박산낸 국가의 횡포에 응분의 배상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남영.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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