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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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장수기업인 삼양그룹을 이끌어온 김상홍(사진) 삼양그룹 명예회장이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김 명예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상과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1947년 삼양사에 입사, 선친인 창업자 수당 김연수 회장과 함께 삼양그룹의 기틀을 닦았다. 56년 33세의 나이로 삼양사 사장을 맡아 제당업에 진출했다. 삼양사는 64년 국내 재계 3위권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고인은 69년 전주에 공업용 플라스틱인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세워 신사업 분야인 화학섬유산업에 뛰어들었다.

김 명예회장은 선견지명 있는 연구개발(R&D)투자로도 유명하다. 1979년 종합연구소를 세우고,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테르 ‘중공복합방사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기존 생산 효율을 두배 이상 끌어올려 수출 증대와 수입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전주공장은 90년대에 단일 공장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김 명예회장은 특유의 신사다움과 중용을 지킨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최근까지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종로구 연지동 본사로 출근해 젊은 직원들의 귀감이 됐다. 고인은 자서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에서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고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 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런 경영방침 덕에 삼양그룹은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에도 ‘큰 어려움 없이 위기를 벗어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1960년대 초 당시 김상홍 삼양사 사장(맨 오른쪽)이 삼양설탕 공장을 방문해 제품 생산 과정을 살펴 보고 있다. [삼양그룹 제공]

3남이었던 고인은 동생인 김상하 현 삼양그룹 회장과 우애 깊은 형제 경영을 해 재계 안팎의 부러움을 샀다. 생전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늘 경청하는 고인을 두고 “김 명예회장과 이야기 하고 있으면 그릇의 크기가 얼마만큼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선친의 유지를 이어 장학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선친이 국내 최초로 세운 민간 장학재단인 양영재단(1939년 설립)과 고인을 비롯한 자녀가 세운 수당재단(1968년)은 지금까지 2만1000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420여 명의 대학교수에게 연구비를 각각 지원했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어른이었던 김 명예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1993년~현재)·부회장(1983~1993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1974~1992년) 등을 지냈으며, 금탑산업훈장(1986년)·한국의 경영자상(1989년)·유일한상(2001년) 등을 수상했다. 학창 시절엔 빙상 스포츠에 발군의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보성전문 재학 때는 일본 학생종합빙상대회에 출전해 3관왕에 올랐다.

유족은 부인 차부영씨와 아들 윤(삼양사 대표이사 회장)·량(삼양제넥스 대표이사 사장 겸 삼양사 사장)씨와 딸 유주·영주 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다. 장지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선영, 발인은 27일 오전 7시다. 02-3010-2631.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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