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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종전이냐 확전이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은 이미 끝난 전쟁의 종전(終戰)선언을 미루고 있다. 북부동맹군이 카불에 입성한 지난달 13일 탈레반 정권은 붕괴했다.

알 카에다는 최후의 거점 토라 보라가 미군의 폭탄세례를 받은 지난 주말 전투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패자가 승자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의식(儀式) 없이 끝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했다는 의심을 받는 테러조직에 통쾌한 보복을 가해 9.11 테러에 충격을 받은 국민의 울분에 분출구를 열어줬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식으로 말하자면 역사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확인했다.

그런데 미국은 왜 전쟁의 종전을 선언하지 않는 것인가.

*** 美강경파 의도대로 수행

그것은 겉으로는 빈 라덴을 죽이지도 붙잡지도 못했기 때문이다.탈레반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행방 또한 묘연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전쟁에는 이겼지만 수갑을 차거나 관 속에 누워 있는 빈 라덴을 미국인들에게 보여주는 드라마를 연출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생략하는 부시 정부의 속셈은 확전에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방부 강경파들의 페이스대로 수행됐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협상파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부시와 럼즈펠드, 국방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로 연결되는 확전파는 내친 걸음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밖으로 전선을 확대할 경우 첫번째 대상은 당연히 이라크다.아들 부시는 아버지 부시가 10년 전에 완성하지 못한 사담 후세인 처치를 끝내고 싶다. 부시의 참모들은 빈 라덴이 이라크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 9.11 규모의 테러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라크는 또 생물.화학무기와 어쩌면 핵무기를 개발 중이거나 이미 개발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어 이라크 공격 없는 테러와의 전쟁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중앙정보국 요원들에 의한 후세인에 대한 대안이 이라크 국내에서 적극 모색되고 있는 것 같다.

두번째 대상은 소말리아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허리 부분이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으로 뿔처럼 튀어나와 있는 나라가 소말리아다. 이 나라는 수에즈운하와 홍해에서 아라비아해로 빠지는 전략적 요충인 아덴만의 초소와 같은 위치에 있다. 그 배후에 수단이 있고 남쪽으로 케냐와 탄자니아가 있다. 1990년대 후반 알 카에다가 본거지를 두거나 미국 대사관을 폭탄테러한 나라들이다.

부족간의 싸움으로 정부다운 정부가 없는 소말리아는 빈 라덴에게는 안성맞춤의 근거지다. 1993년 미국 군대가 18명의 전사자를 내고 서둘러 철수한 것도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훈련받은 테러리스트들을 지휘한 결과다. 부시는 클린턴이 그때 진 빚을 갚고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을 평정해 걸프지역의 산유국들과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의 원유 수송로에 대한 테러 위협을 제거하고 싶다.

문제는 세계 여론의 반대다.국제연대에 참가한 영국.독일.프랑스가 반대하고,러시아의 반대는 더 강력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의 참견이 귀찮은 미국은 동맹국들의 실전(實戰)참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북부동맹군만 거느리고 전쟁을 했다. 프랑스 특수부대가 우즈베키스탄 기지에 발이 묶여 불만의 날들을 보낸 것도 그래서다.

*** 세계 여론반대가 변수로

부시는 양자택일해야 한다. 우방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나 소말리아,또는 두 나라 모두를 차례로 공격하거나 아프가니스탄 평화정착에 힘을 쏟는 것이다. 우방이 반대하는 확전은 테러와의 전쟁을 미국만의 것으로 축소할 위험이 있다.세계가 바라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 안정된 나라를 세워주는 것이다.

다음주에 6개월의 아프가니스탄 과도체제가 출범하고,그뒤 2년의 임시정부를 거쳐 정부가 등장한다는 일정이다. 73년 이후의 내전으로 거덜난 아프가니스탄이 나라의 기본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인가는 부시의 결정에 달렸다.미국이 전선확대를 단념하고 평화유지군 파견과 나라 만들기를 지원해 정권을 잡은 북부동맹의 전리품 다툼으로 새로운 내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게 가장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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