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조용필과 예술의 전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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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최근 예술의전당이 발표한 올 공연 성적표를 보니 '조용필 콘서트'가 돋보였다. 총 10회(12월 1~10일) 공연에 1만6천6백17명(회당 평균 1천6백62명)이 모였다. 회당 최대 유료관객 동원에 유료관객 점유율(73%)도 톱이었다.'국민가수' 조용필답다.

그런데 이런 성공에 박수를 치고 나자 뒷맛이 씁쓸하니 어찌된 일인가. 예술의전당의 최고 상품이 대중가수 조용필이라니 누구나 이 부조화에 대해 의문을 품을 것이다. 대중가수의 가공할 파괴력으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켕긴다.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국고의 지원을 받는 예술의전당이 대중가수의 공연에 맛을 들여 본연의 임무, 즉 예술의 공공성 함양이란 대전제를 망각하고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이다. 예술의전당 무대에 대중스타가 설 수 있고 없고를 논하는 게 아니다. 서는 것은 좋다.

대형 공연장이 턱없이 모자라는 국내 형편상 순수.대중예술이 있는 장소를 나눠쓰자는 것은 좋은 발상이다. 문제는 재정자립도 때문에 이 공연에 예술의전당이 목을 매고 있지 않나 하는 징후들이다.

성공이 계기가 됐겠지만 조용필 콘서트는 1999년 첫해 3회로 출발했다가 매년 공연 횟수를 늘려왔다. 올해 10회(애초 9회였다)로도 모자라 내년엔 15회 공연으로 늘릴 예정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올해엔 예술감독까지 이 행사의 연출자로 참여했다.

12월은 공연자나 단체 누구나 탐내는 최고의 시즌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대중스타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순수 예술계 사람들은 그들의 '수호천사'로 여겼던 예술의전당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예술의전당이 조용필을 상품화하고 싶다면 그의 가공할 관객 동원력을 감안해 비시즌에 배치하는 게 효과적인 것 아닌가. 순수.대중예술의 균형을 위해서도 이게 옳다. 그렇게 못하는 것은 예술의전당이 태생적 의무를 저버린 채 상업화하고 있다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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