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후발 통신사업자에 차등 규제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제2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무성했던 말들이 LG텔레콤의 유상증자와 함께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IMT-2000 사업자 선정 과정은 통신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바람직한 IMT-2000 통신정책은 어떤 모습이어야 했는가?

우선 정부의 당초 원칙대로 두개의 동기식 사업자가 선정됐어야 했다. 세계 최고의 부호분할 다중접속(CDMA)기술과 3천만명의 가입자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투자를 더 많이 해 제3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세계 제일의 CDMA 기술 보유국인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IMT-2000서비스를 제공하는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은 비동기식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했고 정부도 이에 동조해 당초의 원칙을 깨고 기술방식을 사업자 자율에 맡기는 우를 범했다.

결국 세계 첫 IMT-2000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예를 일본에 내주고 말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비동기식 사업자로 선정된 IMT-2000 사업자들은 비동기식을 접어둔 채 기존 2세대 무선 주파수를 이용한 동기식 서비스의 선두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정부는 가입자가 많은 SK텔레콤과 한국통신에 동기식 IMT-2000 사업권을 줘 세계 최고의 동기식 기술을 민간기업 주도로 더 발전시켜야 했다. 가입자가 적은 LG텔레콤을 비동기 사업자로 선정해 정부가 비동기식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책도 필요했다.

또 IMT-2000 사업권 중 최소한 1개는 신규 사업자에게 줬어야 했다. 선진 16개국의 IMT-2000 사업자 선정 사례를 보면 14개국이 신규 사업자를 하나둘 포함시켰다. 우리나라도 3개 사업자 중 1개 사업자는 신규 사업자가 주도하게 해 국내 중소업체를 육성하고 신규 통신장비의 수요를 창출했어야 했다.

파워콤 민영화, 초고속 인터넷 부문의 구조조정 등이 통신업계의 현안으로 대두했다. 정부는 통신사업의 3강 구도 정착을 통한 유효 경쟁체제 확립을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대칭 규제를 통한 후발 사업자의 육성은 정부가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이다. 비대칭 규제란 선발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를 차등 규제해 후발 사업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통신사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올해 초 3위 이동통신 사업자인 보다폰이 2위 사업자인 옵터스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 합병회사의 시장점유율이 51%를 넘는다는 이유로 인수합병을 허가하지 않았다. 특정기업의 시장 지배를 막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 후발 통신사업자의 경쟁력은 선발 사업자에 크게 뒤져 있다.시내전화 부문의 경우 경쟁이 도입된 지 2년반이 지났는데도 하나로통신의 시장 점유율은 3% 수준에 불과하다. 시내전화 부문의 경쟁체제 확립을 위해선 가입자가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사업자를 변경할 수 있는 번호 이동성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접속료를 대폭 내려 후발 사업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현재는 가입자 규모가 작고 원가 부담이 높은 후발 사업자에게 선발 사업자와 같은 원가를 적용함으로써 후발 사업자는 막대한 접속료 정산수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비대칭 규제를 통한 후발 사업자 지원.육성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통신시장의 경쟁체제 확립에 있다. 사업자 간의 경쟁을 통해 보다 나은 서비스와 품질로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신윤식 <하나로통신 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