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현대예술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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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술적 명성이 대중적 이해와 따로 노는 대표적인 사람이 아티스트 백남준이다. 도깨비가 따로 없는 그 괴짜를 왜 미술사적 인물이라고 하는지 사람들은 얼떨떨하다.

멀쩡한 피아노에 도끼질을 해대는 콘서트나 "예술은 사기"라는 발언도 머리 띵하다. 이유가 있다. 예술을 거룩한 것으로만 아는 엄숙주의 체질의 한국인들에게 플럭서스 정신은 소화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백남준의 모든 것이자 키워드인 플럭서스란 한마디로 화석화된 고급예술에 대한 전복(顚覆)이다. 딴지일보 식으론 똥침놓기다.

그가 스승 존 케이지 등과 함께 감행한 19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표현방식이 유쾌.상쾌.통쾌하고, 때론 유치할 정도로 솔직한 건 그 때문이다. 모더니즘에 지친 서구가 플럭서스에서 속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맛본 것도 그 맥락이다.

그 백남준은 한국 현대예술의 취약점으로 정보부족을 꼽는다. 그건 예술문맹(文盲)에 대한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대예술이 '즐거운 놀이'임을 보여주는 전시란 사회적 의미마저 획득한다. 꽉 막힌 사회에 이(異)차원의 해방구다. 서울의 새 미술1번지로 등장한 사간동 아트선재센터의 '황규태 사진전'이 그 공간이다.

출품작들은 재래식의 찍는(take)사진이 아니다. 만드는(make)사진이다. 때문에 사진의 통념을 떠나 이미지로 치닫는다. 그게 현대사진의 어법인데 분위기는 플럭서스를 꼭 닮았다. '놀이'라는 주제도 그렇고, 대형 문짝만한 작품들도 극히 모던하다. 알고 보면 카메라 렌즈의 거짓말을 극대화한 장난이다.

이를테면 캡슐 알약이나 TV 모니터의 화소(픽셀)를 수천배.수십만배 확대해 캔버스 회화인 양 착각케 만든다. 뜯어낸 양변기를 전시장에 버젓하게 갖다놓은 배짱의 마르셀 뒤샹이라면 박장대소부터 할 게 분명하다. 여기에 디지털화한 흑백사진 수백점을 재트리밍해 한데 붙인 작품도 있다. 그 이미지의 난장은 존 케이지 음악과 함께 통합예술을 연출한다.

문제는 그런 실험이 미술동네 내부의 일로만 그저 조용하게 지나간다는 점이다. 예술과 사회가 칸막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이 사회는 현상으론 적막강산이고, 구조로 보면 답답하다.

한편으론 겁도 난다. 정보부족 때문에 카르티에 브레송은 물론 로버트 프랭크.신디 셔먼.낸 골딘 등 현대사진의 거물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게 뭔 장난이냐"고 엄숙하게 핏대낼까 걱정스럽다. 정치 스캔들과 달리 문화쇼크는 잦을수록 좋은데도….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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