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원로가수 고 원방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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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6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한 원방현(元芳鉉.본명 元九鉉)씨는 1950~60년대에 날렸던 원로가수다.

그의 대표적인 노래는 '꽃 중의 꽃'이다. "꽃중의 꽃 무궁화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당시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도 중년층 이상의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元씨는 성격이 매우 활달했다. 술을 즐기고 동료 가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KBS 가요무대의 권영태 PD는 "고인이 높고 쟁쟁한 소리로 무대를 손아귀에 넣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애도했다.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44년 체신대 무선과를 나와 체신부(44~48년).공군정보국(50년)에서 일했다.

고인이 연예계에 들어선 것은 47년. 어릴 때부터 노래에 소질과 관심을 보였던 그는 이 해 서울중앙방송 제1기 전속가수 선발대회에서 뽑혀 가수로 데뷔했다.그 뒤에도 합동통신.동양통신.치안본부 등에서 일하며 노래를 부르다 5.16 이후 전업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50년대에 '정열의 맘보''달려라 청춘마차''OK목장''피난길 고향길'을 불러 인기를 끌었다. 또 60년대에는 '봉덕사의 종소리''추억의 탱고''애수의 기타''묻지마라 내 고향' 등을 열창했다.

이밖에 그는 번지없는 주막, 타향살이, 짝사랑, 나그네설움, 황성옛터 등을 즐겨 불렀다.

고인의 가요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50년대 이후 줄곧 가요 현장을 지켜왔다.최근까지도 KBS 가요무대 등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솜씨를 뽐냈다.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경로잔치 등에도 자주 나가 흥을 돋우곤 했다.

元씨가 87년 환갑 기념으로 내놓은 '내가 넘는 인생길'은 자신의 인생을 압축한 듯하다.

"사랑 하나 품에 안고 내가 넘는 인생길.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던 청춘. 그리워도 서러워도 후회 한번 없었지. 남은 날도 남은 길도 그렇게 가리다."

장남 태선씨는 "가사 중 '사랑'을 '노래'로 바꾸면 바로 아버님의 인생이었다"며 "연예인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았던 시절에도 아버님은 노래 하나를 위안삼아 사셨다"고 말했다.

元씨는 한창때 지구레코드사 등에서 전속으로 활동하면서 일본.동남아 등에서 공연했다. 취입한 노래는 모두 1백50곡. 하지만 트로트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적어지면서 70년대 이후 기억에서 점차 사라졌다. 변변한 상도 타지 못했고, 그를 기리는 노래비 하나 세워지지 않았다.

태선씨는 "무궁화꽃을 노래한 '꽃 중의 꽃'은 사실상 국민가요"라며 "늦게나마 아버님을 기리는 작은 행사라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조연식씨와 3남2녀. 빈소는 한양대병원이며 발인은 18일 오전 8시. 02-2290-9457.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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