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보건규제는 선의의 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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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연말을 맞이해 정부에서 발표한 보건 통계에서 눈에 띄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교통사고 사망자의 격감이다. 경찰청은 지난해에 비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무려 2천여명이나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경제적으로도 6천8백억원에 달하는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하고 교통법규 위반차량 신고에 대한 보상, 교통법규 위반시 보험료 대폭 인상 등 각종 정책이 거둔 성과다.

둘째, 창궐하던 홍역이 자취를 감췄다는 통계다. 지난해만 전국적으로 3만2천여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올해 7월까지만해도 2만1천여명이 발생해 이대로라면 내년 개최되는 월드컵이 걱정된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그러나 8월 이후 지금까지 홍역 환자는 42명으로 대폭 줄었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초.중.고교생 5백84만여명 모두를 대상으로 사상 초유의 일제 홍역 접종을 실시한 덕분이다.

그러나 이들이 시행 초기부터 순조롭게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만 하더라도 개인의 관습을 법으로 규제한다는 사실에 대해 거부감이 높았다.

홍역 일제접종 역시 인도산 저질 백신이란 시비와 함께 백신 부작용이 집단 발생했다는 일부 언론의 과잉 보도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최근 보건관련 규제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면 승용차의 경우 6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며 내년부터는 비행기 내로 확대돼 휴대폰 사용시 최고 1백만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아울러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시 상습 위반자에겐 최고 1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벌금이나 강제 접종 등 규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처럼 탈규제 시대엔 더욱 그러하다.

비타민이 몸에 좋다고 비타민을 강제로 먹일 순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기호와 관습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공익에 심각하게 반한다면 또 다른 문제다.

미국 대법원은 이미 충치 예방을 위해 수도물에 강제로 불소를 섞는 보건사업이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제기된 헌법 소원을 같은 이유로 각하시킨 바 있다. 적어도 모두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일이라면 선의의 규제는 있어야하지 않나 싶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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