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판매 개정법안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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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중요한 내용이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 씌어있는 것처럼 국회 정무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다단계 판매업체에 보험 가입을 의무화해 국민의 피해가 잇따르는 분야에서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만 설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무위의 한 의원은 "법이 개정되면 다단계 판매업체에서 구입한 물품도 14일 안에 반품할 수 있고, 판매원들도 3개월 안에 재고를 회사에 반환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현행 규정으로도 반품은 20일 안에 가능하고, 판매원들도 기한에 관계없이 재고를 반환할 수 있다. 법 개정으로 소비자와 판매원의 권리가 오히려 위축된다는 점을 그 의원이 몰랐거나 숨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다단계 판매조직도 사고 팔 수 있게 하고, 처벌조항을 완화한 부분은 그동안 공정위나 국회가 발표한 개정안의 설명자료에서 빠져 있었다.

문제의 법률 개정안은 원래 공정거래위가 연구용역 및 민주당과의 당정협의를 거쳐 지난해 말 시안을 마련했다. 이 경우 행정입법으로 부처별 협의와 심사,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내야 하는데, 공정위는 이를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에게 전달해 의원입법으로 추진했다.

이 업무를 맡은 공정위 이성구 전자거래보호과장은 "방문판매법상 다단계판매 관련 조항의 개정을 업계에서 계속 요구해왔다"며 "지키기 힘든 법률에 처벌규정만 너무 엄한 상태로는 다단계판매가 계속 음성화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를 좀 완화하되 보험 의무가입 등으로 업체의 책임을 높여야겠다는 취지로 개정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 4월에 정식 발의된 뒤 소위원회의 토론을 거치면서 다단계 판매회사의 책임 부분이 다소 약해지는 등 공정위의 당초 의도와 달라진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법률안에 안티피라미드운동본부 등은 그동안 국회에 수정 청원을 내는 한편 인터넷 등을 통해 통과저지 운동을 벌였다.

법무부도 반대입장을 전달했다. 이 때문에 국회 정무위는 당초 개정안에 들어 있던 '(보호자 동의가 있을 경우)미성년자도 다단계판매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조항을 없앴지만 다른 조항은 대부분 그대로 통과시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개정안 내용과 그동안의 절차를 보면 업계의 로비가 있지 않았나 의심스럽다"며 "법사위에서 문제 조항들을 철저히 따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효준.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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