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구멍뚫린 이질 관리 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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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직원 세 명으로는 환자 집계하기에도 바빠요."

'후진국 전염병'인 세균성 이질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14일 환자가 2백43명으로 늘었는데도 방역기관인 국립보건원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발생한 전염병 환자가 10만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담당하는 보건원 방역과 직원은 9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질 방역 대책 업무는 과장을 포함해 네 명이 맡고 있다. 이들은 전국 보건소에서 올라오는 확진.의사.설사환자를 집계해 상부에 보고하고 하루 두차례 언론에 발표하느라 힘겨워 한다. 국민들은 방역 당국이 뭔가 확실한 대책을 세우고 집행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겠지만 실제로는 환자 집계에 바쁜 실정이다.

그러나 보건원 관계자는 "이질이 난데없이 겨울에 집단 발생한 것은 '기본이 안된' 우리 식품안전.전염병 관리체계에 원인이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기본이 안되기는 의료기관.식품업소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는 "똑같이 설사.복통을 해도 식중독균(포도상구균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전염병균(이질균 등)은 보건원에 각각 신고해야 하는 이원화된 체계도 문제"라며 "일선 보건소조차도 어디에 신고해야 할지 몰라 며칠씩 허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조기 발견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번 이질도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문제의 김밥 도시락 업체인 S사의 직원 가운데 한 명이 지난달 복통 증세로 동네 의원을 찾았고 진료차트에는 '설사를 두번 했다'는 기록까지 나온다.

그러나 동네 의원은 설사환자가 발생했는데도 보건소에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S사는 이 직원을 며칠 쉬게 한 뒤 계속 일하도록 했다. 이처럼 신고를 않거나 늦어지는 것은 식품위생 사고 대부분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이다.

현행 전염병 예방법은 신고를 게을리한 의료기관에게 2백만원, 전염병 환자를 업무에 종사시킨 업소에는 벌금 3백만원을 물리는 게 전부다.

우리 국민에게는 방역 당국의 특별한 대책을 기대하기보다 음식 조리 전이나 용변을 본 뒤 손을 깨끗이 씻는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 최상의 방역 대책으로 보인다.

박태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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