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일의 마켓 워치] 시세차익 → 운영수익 중심으로 부동산 투자 패러다임이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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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메릴린치의 ‘2009 아시아·태평양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부유층의 총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38%다. 땅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조상들의 생활습관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분명 부동산은 부를 가늠하는 척도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상반기 이후 국내 부동산 시장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주 시작된 보금자리 2차 지구 사전청약에서도 일부 강남권을 제외한 경기 4개 지구는 경쟁률이 낮았다. 최근 부동산시장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필자가 프라이빗뱅킹(PB) 고객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감도 긍정적이진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고객이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파트나 비사업용 토지 등을 매각하려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 예전과 달리 집값 등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 폭 꺾였기 때문이다. 주택가격 거품론과 대세하락론이 고개를 든 가운데 대규모 보금자리 주택까지 공급되면서 하반기에도 부동산시장이 회복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자 고객을 만나보면 부동산 투자에 대한 접근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서울 강남권 등 주요 상권의 경우 임대료 수준과 관계없이 매매 호가 위주의 수익형 부동산 시장이 형성돼 있다. 매입가 대비 임대수익률보다는 시세차익이 투자를 결정 짓는 변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부진으로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많이 줄면서 임대수익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 때 임대료 수입 대비 매매가의 적정성, 향후 공실 가능성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묻지마식의 아파트 투기 행태도 이제 꼬리를 감추고 있다. 대신 기본에 충실한 투자, 장기적인 안목에 기초한 투자로 그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PB본부를 맡아온 몇 년간 많은 고객을 접하며 현재의 부동산 시장은 시세차익과 같은 ‘자본이득’에서 ‘운영수익’ 중심으로 투자환경이 변화하는 과도기임을 실감한다.

2030년 한국은 G20 회원국 가운데 노인 인구가 넷째로 많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가 최근 발표됐다. 고령화·저출산·저성장의 문제는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워 부동산시장의 구조적인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소득증가율 감소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금융규제 ▶다주택자와 비사업용 토지의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시장의 제도 변화는 ‘시세차익’에서 ‘현금흐름’으로 부동산 투자의 패러다임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서울에 근접한 수도권 내 개발 가능 지역이 ‘신도시’란 형태로 이미 대부분 개발이 완료됐다. 서울 구도심도 도시정비사업의 대대적인 계획 및 시행 등이 이미 가치에 반영돼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부동산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큰 자본차익을 쫓기보다 운영수익에 관심을 가지는 쪽으로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권준일 하나은행 PB본부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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