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책동네] '프린들 주세요'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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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일본의 '기무치'를 누르고 세계 공인을 받은 우리 음식 '김치'.과연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을까.

또 '퀴즈'란 말이 1791년 더블린의 한 극장 지배인이 아무 의미 없이 만들어낸 단어라는 걸 아시는지. 어느날 온 마을의 벽과 건물에 '퀴즈'라고 써놓은 것을 궁금해 한 사람들에 의해 퍼진 말이란다.

장편동화 『프린들 주세요』는 이런 언어와 언어가 뜻하는 것과의 관계, 그리고 한 단어의 탄생과 생명력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해준다.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과 선생님의 역할까지 짚어보게 하지만,이야기는 재기발랄 그 자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과 선생님간에 벌어지는 갖가지 '머리 싸움', 조그마한 시골마을 소년을 순식간에 전국적 '스타'로 만드는 소동 등이 끊임없는 웃음을 제공한다.

항상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친구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소년 닉. 언어와 문법,규율과 전통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그레인저 선생님의 사전 관련 숙제로 끙끙 앓던 중 선생님을 골릴 기발한 방법을 떠올린다.

"사전에 나오는 말은 바로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으니, 한번 새 단어를 만들어보겠다며 '펜'을 '프린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문방구에 매일 친구들과 함께 가서 "프린들 주세요"하며 장난을 친 것으로 모자라 그레인저 선생님 앞에서 연극을 꾸미고 다른 학생들도 재미로 닉에게 동조하면서 사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화가 난 그레인저 선생님은 '프린들'이란 단어를 쓰는 학생들에게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벌을 받게 하는 강경책으로 맞선다. 마을 신문에 기사화되는 등 큰 화제가 되자 닉의 가족 앞엔 '프린들' 상표를 등록해 돈을 벌어보자는 사람, 전국 TV뉴스에 방영하겠다는 제의 등이 잇따른다.

닉과 그레인저 선생님간의 그 '10년 전쟁'은 결국 '프린들'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오르는 닉의 '승리'로 끝나는데…. 가슴을 찡하게 하는 마지막 반전은 어린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아이들이 영어사전을 들춰보진 않을까. 물론 사전에 '프린들'이란 단어는 없다. 살아있는 등장인물들과 짜임새있는 이야기 전개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사건 속에 독자를 쏙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우리말 사전도 다시 한번 꺼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겐 아이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력을 맘껏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싶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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