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깨달음] 원불교 첫 외국인 교무 원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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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991년. 열여덟 살의 인도 청년 아지타는 이제 몇 년 뒤면 '훌륭한 의사선생님'이 될 터였다. 해발 3천8백m 히말라야 고산지대인 라다크에서 유학생으로 뽑혀 남인도 방갈로르로 온 지 5년. 라다크 출신 유학생으로 최초의 의대생이었던 그의 앞길은 창창해 보였다. 적어도 지참금 문제 등으로 학대받다가 자신의 몸에 성냥불을 그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차별받는 인도 여성들의 삶-.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朴淸秀)교무를 만났습니다. 모든 일에 앞장서는 '여성'을 보았고,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원불교의 교리를 들었지요. 그리고나서 저는 제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대하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93년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8년. 그는 원현장(圓玄裝)이란 법명으로 새로 태어났다. 14일 전주 익산 원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열리는 졸업식과 출가식을 마치면 그는 원불교 86년 사상 최초의 외국인 교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될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문이었습니다. 한 해를 휴학하며 따로 공부를 해야 했죠. 매운 것을 좋아하는 덕분에 음식이 안 맞아 고생한 적은 별로 없었어요."

그는 내년 1월 초순이면 고향 라다크와 방갈로르를 오가며 교당을 짓고 원불교 교무로서 첫 활동을 시작한다.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에 한국의 원불교를 전하러 들어가는 최초의 인도인이라는 사명의식은 그를 지탱하는 원동력일 터다. 석사논문 주제가 '인도에서 원불교를 어떻게 포교할 것인가'였던 만큼 마음의 준비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왔다. 그래도 긴장되기는 매한가지다.

"모든 일을 혼자서 책임지고 해야 하니까요. 특히 인도는 아직 계급사회인 만큼 조심스러운 점이 많지요. 어느 한쪽만 대상으로 하면 다른 쪽에서는 관심도 두지 않거든요."

그래서 상류층들에게는 교법 중심으로, 하층민들에게는 자선활동을 하면서 차근차근 접근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는 "인도의 종교는 수행 또는 신앙생활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데 반해 원불교는 이 두가지를 다 중시한다"며 이런 장점을 잘 살리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원불교 번역경전. 강남교당의 후원으로 99년 힌디어 및 라다크어로 된 번역본이 출간됐다. 7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어학 실력도 그를 도와줄 것이다. 지금 원광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누이동생도 머지않아 그의 원군이 될 것이다.

"교만이나 유혹.분노에 흔들리지 않기를, 범속하지 않고 대범하게 대처하라는 경전 말씀을 항상 되뇌곤 합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박청수 교무는 "말없이 자신의 할 일을 다하는 조선시대 선비의 심성을 타고 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잘 할 자신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빙긋 미소만 지어보였다. 그 옛날 현장법사가 히말라야 산맥과 고비사막을 넘어 중국에 불교를 전하러 갈 때도 아마 그런 미소를 지었으리라. 이제 그 길을 다시 거슬러 가려는 그에게 현장이란 법명은 인연(因緣)이 아닌가 싶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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