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 실천수기…남편이 가사 도울때마다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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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저는 10개월된 아들을 둔 맞벌이 주부입니다. 오늘도 남편 손에는 쓰레기 봉투가 매달려 있네요.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퇴근해서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녁 밥 짓기, 청소, 집안에 널려있는 빨래 모아 세탁기 돌리기 등. 빨래를 개면서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오르기 일쑤였지요.

도대체 결혼은 왜 했는지 후회막심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저도 쉬고 싶었거든요.

마침내 저는 남편을 변화시키리라 다짐했습니다.

먼저 화장실에 메모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일기를 써 붙였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저녁 반찬을 못 만들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싶었는데 청소와 빨래, 애기를 돌보느라 시간이 없었다. 바깥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현관문 안쪽에는 '우리 남편 최고'라는 제목의 월간 체크 표를 예쁘게 만들어 걸어 두고, 남편이 가사 일을 도와줄 때마다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월말에 준비한 선물을 남편의 직장으로 배달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지요.

남편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마침내 '함께 만들어가는 가정'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제가 빨래하기 귀찮아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남편이 청소기를 돌립니다. 저는 분유를 타고 남편은 기저귀를 갈고, 제가 설거지하면 남편은 TV 보면서 콩나물까지 다듬어주죠. 지금 저희 집엔 '함께 일하고 함께 쉰다'는 표어가 걸려있습니다.

어디에? 화장실 앞에.

의도적이긴 하지만, 화장실에 오래 머무르는 남편 때문입니다.

제 아들 역시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며 자랄 것이고, 커서도 아내를 배려할 줄 아는 멋진 남편이 되겠죠?

김미영 <27.회사원.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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