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ABM협정 일방 탈퇴] '30년 핵자물쇠' 공식 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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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이 1972년 소련과 맺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협정에서 탈퇴하면 지난 30년간 지속돼온 핵확산 억제 체제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ABM 협정은 미국과 소련(또는 이를 승계한 러시아)이 상대방 국가를 위협하는 핵탄두 수를 줄이자는 뜻에서 서로 핵미사일을 방어하는 능력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즉 소수의 핵미사일로도 상대방을 위협할 수 있도록 해 핵탄두를 다량 보유할 필요성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따라서 이 협정이 사라지면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로부터 영토를 방어하는 기술과 이러한 방어막을 뚫을 수 있는 새로운 신형 무기를 개발하는 국제적 경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적국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미사일방어(MD)체제'를 구상해왔으며 이는 ABM 협정의 정신을 위배한다.MD체제 구축은 미국 영토를 방어하는 완벽한 '미사일 방패'를 마련하자는 것이므로 이 조약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우려해 ABM 협정의 규정 범위 안에서 MD실험을 해오면서 한편으로는 합의 당사국인 러시아에 조약 개정에 합의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미국은 "불량국가들이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기 시작해 ABM 협정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주장해왔으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이를 설득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10일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해 올해 안에 협정 개정을 위한 합의를 끌어내려 했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미국이 서둘러 ABM 협정 탈퇴를 선언하려는 것은 내년 여름에 착수할 MD 요격기지 건설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새로운 미사일 요격기지 건설은 ABM 협정에 어긋나므로 협정 위반을 피하려면 지금쯤 탈퇴를 선언해야만 한다. ABM 협정은 탈퇴시 이를 6개월 전에 상대측에 통고토록 하고 있다.

미국은 협정 탈퇴와 동시에 ABM 협정이 제한하고 있는 우주 미사일 요격이나 해상 미사일 요격 시스템과 관련한 실험도 본격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관련 예산도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이 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 미국이 현대사에서 중요한 국제협정을 저버리는 첫 사례로 기록되며 중국과 러시아 등의 반발도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이 ABM 협정을 어겨가며 MD를 계속 추진하면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신형 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말해왔다.

유권하.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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