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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평론가’ 이어령과 ‘당대의 시인’ 김수영의 난타전을 읽는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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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유쾌한 창조
이어령·강창래 지음
알마, 304쪽
1만5000원

두 사람 공저(共著)로 돼 있지만 실은 출판 편집자, 저술가 등으로 활동해 온 강창래씨의 ‘이어령 탐구서’다. 열 번의 대면 인터뷰, 이씨 저서를 포함한 수 십 권의 관련 서적은 물론 방송사의 인터뷰 시리즈까지 꼼꼼히 챙겨 본 후 쓴 것이다. 시인 김수영과의 1960년대 불온시 논쟁, ‘디지로그’ 등 특유의 창조 담론,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사정 등 이씨의 비상한 재능과 개성을 드러내는 사례와 면모를 장(章)별로 나눠 다뤘다. 특히 이씨와 강씨가 주고 받은 일문일답식 인터뷰 등 이씨의 글이 아닌 말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있어 인간적인 체취마저 느낄 수 있다.

책날개의 자못 ‘방대한’ 소개처럼 올해 일흔일곱인 이씨가 그동안 보여준 활동 반경은 짧은 몇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하다. 문학평론가로 문필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는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문화부 장관을 지냈고,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는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일곱 살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본지 등 숱한 일간지의 논설위원,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을 지냈고, 수 백 권의 저서를 썼다. 스스로는 물 나올 기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여기저기 우물을 팠을 뿐 우물에서 퍼낸 물을 마시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그만큼 관심이 다양하고 왕성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동안 이씨 인물론도 여러 차례 쓰여졌을 게다. 강씨는 문학평론가로서 이씨가 ‘저평가’된 전후 사정을 소상하게 전하는 것을 신간의 셀링 포인트로 삼은 듯하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책의 2장에 그런 내용을 전진 배치했다. 분량도 상당하다. 또 67년 12월부터 68년 3월까지 이씨가 김수영과 잡지 ‘사상계’, 모 일간지 지면을 통해 주고 받은 여덟 편의 불온시 논쟁 글을 원문 그대로 실었다.

강씨는 50년대 평론가로 이름을 날렸던 이씨가 김현 등 4·19세대 평론가가 문단의 주목을 끌기 위한 이른바 ‘인정투쟁’ 과정에서 깎아내리는 바람에 ‘저평가’됐다는 혐의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평론가 권성우 등의 글을 근거로 제시한다. 김수영과 주고 받은 논쟁글 역시 그런 연장선상에서 소개한 것이다.

두 사람이 난타전처럼 주고 받은 논쟁글들은 순수-참여문학에 대한 소신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감상 대상이다. 정교하고 화려하면서 풍성하다. 논쟁글을 따라 읽다 보면 문학주의자 이어령의 모습이 오롯이 보인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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